한국문학사에서 오래된 논란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최초의 한글 소설이랄 수 있는 '홍길동전'의 저자가 과연 허균(1569~1618)인가 하는 것이다. '홍길동전'의 판본도 여러 가지이고, 허균보다 후대 사람인 장길산이 소설에 들어 있음으로 해서 허균이 이 소설의 저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고소설은 필사를 하면서 시대에 따라 새로운 내용이 첨가된다는 점에서 '홍길동전'이 허균의 작품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는 될 수 없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주장의 주된 근거는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나와 있는 기록이다. 이 주장에도 문제는 있다. 이식이 살아있을 때 '택당집' 전체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훨씬 후대에 송시열이 '택당집' '별집'을 편찬했고, 여기에 문제의 대목이 들어있기에, 후대의 가필로 의심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에도 '홍길동전'의 저자는 허균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광해군 5년(1613년) 일어났던 이른바 '칠서지옥(七庶之獄)' 사건은 허균을 저자로 판단하게 하는 결정적 단서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뒤 유명 가문의 서얼 7명(영의정 박순의 서자 응서, 목사 서익의 서자 양갑 등)은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1608년에 서얼금고(庶孼禁錮:서자에 대한 차별)의 폐지를 주장하며 연명으로 소를 올렸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이들은 불만을 품고 있다가 경기도 여주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허균 등과 교류하면서 자신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강변칠우(江邊七友)라 일컬었다. 이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꾼이나 소금장수로 위장하여 강도 짓을 일삼았고, 마침내 1613년 문경 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량을 약탈했는데, 결국 꼬리가 잡혀 일망타진됐다.

이 7인의 서자 중 한 명인 심우영은 허균의 제자이기도 하기에 허균과 칠서지옥, 그리고 '홍길동전'은 상호 연관 관계 속에서 볼 수가 있다. 허균은 서자들이 잡혀죽는 사건을 보면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소설로 옮겨놓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훗날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는데, 그를 예감했는지 죽기 전에 자신이 쓴 글들을 문집으로 엮어 처가에 보냈다. 그 문집이 바로 '성소부고(惺所覆藁)'이다. 이 책에는 허균의 상당히 혁명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사상이 담겨 있어, 한 시대 급진적 지식인의 실체와 고뇌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이 문집 속에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아주 특별한 글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도문대작'을 요리서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요리서라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추억 혹은 기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허균은 1610년 과거시험을 관장하다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전라북도 함열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다음 해 유배지에서 이 기록을 남겼다. '도문대작'이란 '푸줏간의 문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먹지 못할 음식을 상상한다는 내용이다. 허균은 이 글의 서문에서 외가가 부유했고, 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지냈던 연유로, 나이가 들어서는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냈던 관계로 팔도의 산해진미를 맛보았던 바, 음식에 대해서는 박학(博學)하나 귀양살이를 하는 처지라,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들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맛보았던 음식을 글로 나열하고 허기를 달랬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식은 술과 떡, 다식과 과일, 어류와 육류, 버섯류와 채소류 등 다양하다. 이를테면 대추에 대해서는 "보은(報恩)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크고 씨가 적다. 붉고 물기가 많아 달다. 그 밖에는 모두 이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충북 보은은 대추의 주산지로 명성이 높다. 게에 대해서는 "삼척에서 나는 것은 크기가 강아지만하여 그 다리가 큰 대(竹)만하다. 맛이 달고 포(脯)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기술한다. 요즘의 울진 삼척 영덕 포항 등에서 나는 대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허균은 서문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다. 선현들이, 먹는 것을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을 탐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지적한 것이지 어떻게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겠는가(이상 인용은 고전종합DB)."

'김영란법'이 발효되어 온 사회가 시끌벅적하지만 허균의 말대로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에 대한 경계가 바로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일텐데, 벌써 400년도 더 전에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그 점을 명확히 밝혀 놓았다.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팔도의 산해진미를 얼마든지 먹고 말해도 좋다고 허균은 익살을 부리고 있다.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