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창피하다"고 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일주일 만에 중단한 단식농성에 대해 당 중진 의원과 국회의장까지 지낸 원로가 내놓은 평가이다.

민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리집에는 이 대표를 조롱하는 글이 넘쳐난다. 이 대표도 이런 분위기를 알았는지,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옮겨간 지 하루가 지난 3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원내 1당, 그것도 집권여당의 대표가 결행한 단식농성의 뒷맛이 떫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물이 빠질 때 무리하게 배를 띄우려고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지난달 26일은 국민들에게 한국정치의 민낯을 보여준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단식과 함께 국정감사는 물론 국회가 사실상 정지됐다.

국민은 조선·해운산업의 붕괴로 인한 대량 실직과 국가적 물류대란, 강진으로 인한 피해와 불안에 짓눌렸다. 부산을 비롯한 원전 밀집지역 주민은 원전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청년 취업 전망은 올해도 암울하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책도 불안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도 안보와 경제라는 '쌍끌이 위기'를 연일 입에 올렸다.

이 대표의 단식은 국민의 이런 불안을 덜어줘야 할 국정감사를 마비시켰다. 민생고에 지친 국민이 눈을 흘기는 건 당연했다. 뒤늦게 국감을 나흘 연장한다고 민심이 풀어질 것 같지도 않다. 정치는 명분싸움이다. 명분과 실리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명분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명분이 없으면 국민의 공감과 실리를 얻기 어려운 탓이다. 1983년 가택연금 중이던 김영삼(YS) 전 대통령, 199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단식은 한국 정치사에서 '신화'가 됐다. YS는 '군부독재 청산', DJ는 '완전한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명분이 선명했다.

이 대표는 국회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한 것을 단식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킨 것을 의회민주주의 파괴행위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정 의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굶어서) 죽겠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국회는 헌법이 정한 해임건의안이라는 권한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적·법적 절차이다. 정 의장을 흠집 내기 위해 끌어 내놓은 첨언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문제로 삼기로 하자면, 해임건의안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거부한 박 대통령의 처신이 더 비판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이 대표의 단식에 이런저런 뒷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박 대통령이 '장하다'고 하면 단식을 끝낼 것이라는 야당 대표의 말은 결과적으로 딱 맞아떨어졌다. 여당을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격하시켰다는 여당 내부의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김재원 정무수석이 단식을 끝내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게 단식을 중단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쯤 되면 이 대표가 '승산 없는 단식'을 왜 시작했는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국정감사를 앞둔 정국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와 참모진이 얽힌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등 정권 핵심을 흔들 만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해임안을 거부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이 모든 것이 이 대표의 단식으로 정 의장과 여당 대표 간의 싸움으로 대체됐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한숨을 돌렸는지 모르겠다. 약체 대표로 불린 이 대표가 단식을 통해 내부 리더십을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

국회 협상은 당 대표가 아니라 원내대표의 몫이다. 이 대표가 국회 본회의 안건처리를 문제 삼아 정진석 원내대표를 제치고 무리하게 결행한 단식으로 얻은 것은 모두 국민의 관심과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이 대표는 단식 중간에 당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거대 야당이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들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 대표가 진짜 무서워 해야 할 대상은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경제와 안보위기'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을 먼저 생각했다면 집권당 대표가 정치를 마비시키는 극단적인 투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과 자신을 위한 단식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병실에 있는 이 대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