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말들을 보면 북한이 곧 무너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지난 주 초 박 대통령은 북한 엘리트층이 무너지고 주요 인사들의 탈북·망명이 이어져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인다고 했다. 당연히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진 나머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내렸다. 북한은 일인지배 독재체제이자 소수 엘리트지배연합을 통해 움직이는 체제다. 지도자가 주민들에게 폭압 및 공포통치를 하여 민심이반이 일어나고 대규모 탈북 사태를 막아야 할 지경이라면 심각하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지배연합을 구성하는 소수 엘리트층이 떨어져 나간다면 그 역시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이로 미루어 북한체제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데는 그럴싸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신판 북한붕괴론은 새로운 근거를 보여주지 못한다. 1990년대 초중반에 북한붕괴론이 기승을 부린 때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많은 분석가가 북한이 5년 내 혹은 10년 내에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년을 못 버틴다고 한 사람도 보았다. 당시 북한경제는 완전히 파탄이 난 나머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고, 김일성 주석마저 갑자기 사망했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새 지도자가 새 기치를 내걸고 체제를 유지해 나갔다.

약 20여 년이 흘러 제2판 북한붕괴론이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북한붕괴에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이명박 정부 임기 말까지 북한급변사태론에 빠져 대북 강경압박정책으로 일관했다. 정부 안팎에서 북한 '급변사태' 담론이 넘쳐났다. 2011년 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다. 권력을 승계할 다음 세대 지도자도 준비되지 않았다. 체제가 붕괴되고도 남을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새 지도자가 큰 혼란 없이 권력을 승계했다.

북한체제가 문제투성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북한도 하나의 국가체제다. 국가체제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신격화된 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해도, 경제가 파탄지경이 되어도 무너지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핵과 미사일로 골치를 썩이니 홧김에 김정은 체제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너무나 감정적이거나 무모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정에 '장삼이사'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와 정책결정자들이 그런 사고에 빠지면 십중팔구 정책실패와 국익 훼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북한체제 붕괴는 우리 국민의 비교적 안정된 삶에 축복이라기보다 일대 재앙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여러 각도에서 볼 때 북한붕괴를 한국사회가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특히 현 정부에 그런 엄청난 위기에 대응할 역량이 있느냐도 의문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위기관리에 실패한 경험에 비춰볼 때 그 의문은 더 없이 커진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고개를 드는 북한붕괴론은 현실성도 없거니와 사실 매우 과격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북한붕괴에 따른 급변통일 역시 과격한 생각이다. 동북아의 지정학이 얼마나 복잡한 형국인가에 대해 조금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을 쉽사리 할 수 없다. 중국은 입만 열면 한반도의 안정을 말한다. 그건 이웃인 북한에 급변사태와 같은 골치 아픈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대외전략의 강고함을 뜻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북한붕괴와 같은 사변이 발생해 군대를 개입시켜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현재 미·중은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 정세 속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우리 모두가 지금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지 않나. 북한붕괴를 감당할 역량은 한국사회 어디에도 없고, 그런 사태가 나면 그것은 즉각 미·중 사이의 문제로 변화될 것이다.

헌법과 수많은 남북관계 관련법들의 정신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통일은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우리 다수 국민의 안전과 국익에 부합된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급변통일은 고비용 저효율 처방인 것이다. 어떻게 된 셈인지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과 안보에 있어 매사 고비용 저효율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현 국면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매달려야 할 것은 북한붕괴 가능성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최대 장애물인 북핵문제에 대한 접근법 찾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