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선비가 소문난 구두쇠인 친구집을 찾아갔다. 친구가 주안상을 차렸는데 고작 나물 두 가지가 안주였다. 선비가 보니 마당에 닭 몇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었다. 섭섭한 마음에 자신이 타고 온 말을 잡아 안주로 하자고 제안했다. 돌아갈 땐 어찌하느냐는 친구의 말에 큰 닭 한 마리를 빌려주면 타고 가겠다고 대꾸했다.

조선조 초기를 대표하는 문인인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장가이면서 익살과 해학에 능했던 그는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어색함을 웃음으로 대치하고 졸라맨 구두쇠의 허리띠를 무장해제시킨 그의 지혜가 돋보인다. 안주가 궁하기로서니 어찌 말을 잡을 것이며, 말이 없다 하여 어찌 닭을 타고 가겠는가. 웃음이 빙그르르 도는 해학이 찰지다.

비약이긴 한데 서거정을 관리로, 친구를 장사꾼이라고 가정해 보자. 말 잡겠다는 말로 닭을 잡도록 유도해 안주로 먹었다면 죄가 될까. 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향응을 제공토록 압력을 가했으니 유죄인가. 비자발적 향응을 제공한 친구가 직무 관련성이 있거나 대가를 바라고 닭을 잡았다면? 물론 소소한 개인사를 어떻게 단죄하겠는가. 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이치에 맞다. 한데, 요즘엔 법이 자꾸 도덕의 영역을 잠식해 세상사가 강퍅해진다.

성매매 방지법과 김영란법의 공통점은 무얼까.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도덕적 사안이란 점이다. 반대하는 즉시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며 부패한 인물로 찍힌다. 한 번 법률로 제정되면 원상복구가 어렵다. 수정이나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일방 통행, 이건 위험할 수도 있다. 도덕적 비난의 대상인가, 아니면 법률적 단죄의 대상인가. 이를 가리는 건 상당히 까다롭다.

'제10번째 사람'이란 개념이 있다. 좀비 영화 '월드워Z'에 나오는데 의미가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이 방벽을 쌓아 좀비의 공격을 막아냈다. 연유를 묻자 '텐스 퍼슨'이라고 답한다. 9명의 의견이 일치할 경우 열번 째 사람은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사안을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우매한 다수의 판단 오류를 피하기 위한 지혜로운 방식이다.

성매매방지법이나 김영란법이 다수에 의한 판단 오류일 가능성은 없는가. 유럽은 매춘부를 직업인으로 인정해 의료보험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그걸 필요악으로 간주한 것이다. 모기와 바퀴벌레가 해롭다 하여 박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게 자연의 속성이다. 인간사회라고 뭐 다를까 싶다.

김영란법의 집단 오류 가능성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아리송하다. 언론을 '공직자 등'에 포함시킨 것과 관련해 헌재는 언론의 자유 침해보다 사회적 공익이 더 크다고 밝혔다. 그런 논리라면 기업을 포함해 사회 모든 부문이 다 포함돼야 한다. 기업은 사익 추구가 목적이지만 공익적 기능도 갖고 있다. 정부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아닌데 업무의 공공성이 있다 하여 민간 영역을 포함한 것은 과잉입법이다.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신고를 의무화한 것도 법감정에 맞지 않다. 형사법에서도 가족의 도피를 도왔다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 하더라도 신고를 할 경우 가정은 파탄에 이를 수 있다. 하기야 '관습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해괴한 결정에 비하면 이번 일은 양반 축에 든다.

법 자체도 포괄적이고 모호한 규정 일색이다. 공무원이 1회 100만 원, 매 회계년도 300만 원 이상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받는다. 형법상 뇌물죄가 직무 관련성, 대가성이 확인돼야 처벌하는 것과 대조된다. 뇌물을 아내에 주면 유죄, 아들에 주면 무죄인 건 또 무슨 경우인가. 법이 워낙 포괄적이고 애매하다 보니 시행령에 구체적 처벌 규정을 담는 것도 위헌 가능성이 높다. 처벌은 법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정청탁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빠진 것도 말이 안 된다. 공익적 목적에 한한다고 하지만 공익과 사익의 구별은 모호하다. 어떤 공익도 사익과 관련 없는 것은 없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이라는 예외 규정도 웃긴다. 어디까지가 사회상규이고, 허용되는 금품인지 애매하다.

부패의 척결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김영란법의 방향이 옳다 하더라도 방법이 온당하지 못하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아무리 급해도 뒤뚱거리는 닭을 타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대상이 400만 명에 달하는 건 무리가 있다. 법 적용 폭을 줄이고 식사, 선물 등에 대한 규정도 너무 지나친 경우를 타깃으로 해야 과잉입법을 면할 수 있다. 친구끼리 술 한잔했다 하여 직무 관련성을 따져 처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 법률의 과잉은 오히려 독이 된다. 만연한 부패의 뿌리는 우리 사회가 가치관을 상실한 데 있다. 도덕의 그물이 찢겨져서는 법의 단죄가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