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던 날 아주 우연히 이스탄불 탁심광장 근처에 있었다. 숙소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던 이틀 동안의 상황 전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21세기에도 권력욕을 이렇게 드러낼 수 있는 지도자의 용기에 놀랐고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탁심광장에 밤낮으로 모여들고 행진하던 시민들의 우매함에 또 놀랐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지도자는 누구이고 국민은 어떤 생각과 판단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지 모를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터키의 현실 앞에서, 진정한 국가 위상과 국민 안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국민 각각의 생각들이 수용되고 융합되는 기회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를 되돌아본다. 강압 정책에 대한 반발,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부정부패, 연줄로 인한 불평등의 결과들,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사건과 사고들,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인 집단 주장들이 거의 매일 끊이질 않는다. 지난 이삼십 년 동안 문제 유형은 변하지 않았고, 그 가짓수와 심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깊어만 간다. 어찌된 일일까. 국민 교육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고 우수 인재들이 공공부문에 집중되며, 정치 또한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우리 처지를 크게 혁신시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국민과 지도자들 어느 누구도 작금의 가혹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매일 벌어지는 이 질곡의 과정과 결과들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할까. 왜 떨쳐내지 못할까. 돈을 최고로 여기는 자본주의의 번성과 자기 주장으로 왜곡된 자유로 넘쳐나는 민주주의 때문일까. 솔직히 지난 수십 년 동안은 공공부문(정치와 행정)의 문제라고 여겼는데, 끊임없이 반복되고 심화되는 것을 보면 그쪽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 자식 세대들은 더 어려운 처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자조 섞인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뭘 바꾸어야 할까. 그동안, 사건사고를 줄이기 위해, 공교육을 혁신하려고, 지긋지긋한 연줄 의존증에서 탈피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돈보다는 삶의 의미에 인생 목표를 두기 위해, 그리고 국민(지역민) 중심의 정책 집행을 위한 여러 노력과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진짜 솔직히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선명히 떠오르질 않는다.
교육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적극적인 국제화 및 IT화의 행보 속에서 현재 우리 국민들의 지적 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상태다. 안타깝게도 그런 국민 지성을 담는 그릇이 정치권이나 제도권을 향한 실망과 비판으로 채워져 간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더 커져버린 양쪽이 먼저 스스로 변하기보다는 남 탓에만 익숙해져 버렸다. '지성을 갖춘 사람들로 가득 찬 혼돈스러운 우리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분명 우리는 지난 방식과 다른 '특별한 새로운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도래해 있다. 그것이 혹자들이 얘기하는 통일이나 개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일과 개헌은 더 큰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국민들이 보유한 세계 최고의 지성을 살려내고 공공부문의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그런 근본의 변화가 우리에겐 먼저여야 한다.
'새로운 C'를 생각해본다(그림 참조). A를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임무'라고 정의한다면 B는 '공공부문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며, A에서 B를 뺀 C는 민간부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익을 추구하며 창조성을 지향하는 민간부문'을 지칭한다. 우리에겐 C가 크게 부족한 상태다. 심각한 수준이다. A와 B가 거의 같아 C가 개입조차 못하거나(상황1) 아예 A와 B가 분리되어(상황2) C는 떠돌다가 변질될 때가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 투자(input)보다 성과(output)가 떨어질 확률이 높고 과정이 왜곡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다양하고 활력 있는 C의 부족과 부실이 근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선진사회에서의 B는 축소됨과 동시에 더 강해지고 포용력을 갖추어야 한다. C는 그런 B를 지원하며 B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다양한 모습으로 채워주어야 한다. 이러한 체제가 지속적으로 누적된다면 기대치 않았던 융합효과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를 S라고 칭할 수 있으며 우리가 선진사회로 나아가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지향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C의 존재감 확보'다. C의 양적 질적 확장은 우리 사회 변화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C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높은 교육수준과 지적 능력을 갖춘 국민들의 마음과 에너지가 사회변화에 적극 활용된다는 의미다. 건전하고 건강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B(공공부문)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C는 네거티브 시민운동그룹이나 B에 예속된 시민집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관습과 관행을 멀리하는 창의성을 근간으로 하는 대체의 대상이다.
이런 시각이 적절하다면, '새로운 C'가 있어야 한다. 신바람 나게 움직이며 도전의식과 열정으로 꽉 찬 C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좋은 C의 대상은 뛰어난 감성과 순수함을 가진 청년들일 것이다. 공무원직보다 안정적이지 못하겠지만 자신을 유연하게 펼쳐갈 수 있고, 대기업보다 보수는 적겠지만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판검사보다 권위는 없겠지만 삶의 사회적 가치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면 분명 청년들은 C에 모일 것이다. C의 키워드는 공익과 창의성이다. 경직될 수밖에 없는 B를 보완하고, 성과 중심의 민간부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의성과 공적 감각을 100%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상상력과 일터로 C는 채워져야 한다. C가 무한한 개성과 비전으로 가득 채워질 때 대한민국은 건전·건강해지며 또한 S를 일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한 나라로 조금씩 변해 갈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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