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라는 책이 있다.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졸업한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썼다. 세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반도는 대륙 끝에 매달린 작은 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으로 향하는 부두이자 동북아 요충지라는 뜻이다. 참치잡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누비며 대기업을 일군 그의 역발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넥센타이어 강호찬 대표도 역발상으로 기업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국내 타이어업체들이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길 때 그는 경남 창녕에 1조5000억 원을 들여 공장을 지었다. 강 대표는 품질 향상을 위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간 매출액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해 공장을 지었고, 최신식 시설은 '쇼룸' 역할을 하며 바이어들에게 큰 신뢰를 줬다. 결과적으로 그의 수읽기는 '신의 한 수'였다. 매출은 2009년 9662억 원에서 지난해 1조8375억 원으로 늘었고, 1000억 원 미만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2249억 원을 넘었다.

오랜 경기 침체와 내수 불황에도 역발상을 통해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들이 있다. 저원가·저비용의 샤오미와 화웨이, 고성능 전기차를 내세운 테슬라 등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공방식 모두가 '사업방식의 차별화'다.

역발상의 아이콘으로 향토 위스키 업체 골든블루의 박용수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 부품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2011년 골든블루를 인수해 위스키 시장에 진출한 뒤 기존 외국계 업체들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 판도를 바꿨다.

2009년 0.1%에 불과했던 골든블루의 시장 점유율은 2010년 1.2%에서 지난해 16.1%까지 성장했다. 국내 위스키 시장이 2008년 정점을 찍은 뒤 7년 연속 마이너스 추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름 없는 지역 업체가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을 제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또한 역발상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갈수록 순한 술을 찾는 소비자의 취향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 국내 위스키 업계 최초로 36.5도의 저도수 위스키 시장을 개척한 변칙수가 제대로 먹혀 들었던 것. '정통 스카치 위스키'라는 명분에 집착해 40도짜리 위스키만 고집하던 다국적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처음으로 화이트 위스키를 만들었다. '갈색 위스키=아재 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무색 투명한 보드카'와 '은은한 과일향'으로 젊은 층의 눈과 입을 자극시키고 있다.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 준다. 박 회장의 최종 목표는 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을 증류, 저장 및 병입하는 '코리안 위스키' 개발이다. '위스키=스코틀랜드산'이라는 공식을 깨겠다는 포부가 다소 무모할지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새 길을 가겠다는 도전 정신은 남다르다.

역발상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남과 다르게 가니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로버트 서튼은 그의 저서 '역발상의 법칙'에서 "새로운 성공을 원한다면 '옛 발상'에서 벗어나 역발상을 하라"고 강조했다.

불황의 늪에서 고전하고 있는 기업들은 지금 그들이 과거의 것을 답습하면서 반복적인 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경제부 차장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