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서거 400주기를 맞는 올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지구촌 곳곳에서 연중 개최되고 있다. 특히 그가 세상을 떠난 4월 23일을 즈음해서는 고향인 영국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위시한 세계 도처에서 그의 문학을 기리는 행사들이 벌어졌다. 5년마다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해 온 '국제셰익스피어학회'의 학술대회 역시 올해는 7월말 런던과 스트랫포드 두 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1564년 장갑을 제조하는 상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오늘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문법학교'에 다닌 것이 유일한 학력이다. 당시 영국의 튜더 왕조가 국민 계몽의 일환으로 대학 출신의 우수한 교사들을 전국에 파견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자 애쓴 탓에 셰익스피어 역시 어린 시절 비교적 탄탄한 기초교육을 받았음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런던 극장가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1580년대 후반, 그의 일천한 학력은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여타 극작가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나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등 소위 '대학 재사(才士)'(University Wits)로 불리던 당대 유명 극작가들은 모두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인텔리로서 탄탄한 라틴어 실력과 로마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어느 날 런던 극장가에 나타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란 작자는 '가방끈이 짧은' 시골뜨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절 로버트 그린이 이솝 우화의 까마귀 이야기에 빗대어 셰익스피어를 "우리들의 깃털로 아름답게 치장한 채 우쭐대는 까마귀"라고 비아냥댄 사실은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텃세와 질시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는 결국 런던의 극장가를 성공적으로 접수하였다. 그가 초창기에 쓴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희극이나 '헨리 4세' '헨리 5세'와 같은 역사극들은 그의 입지를 굳게 만들었으며, 특히 후자의 작품들은 튜더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당시 연극을 공연하던 극장은 6각형 내지 8각형 목조 건물에 천장이 뚫린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셰익스피어가 공동 주주로 참여했던 '글로브 극장'이 대표적이다.

볼거리가 귀하던 시절, 극장은 단돈 1페니만 내면 서서 볼 수 있는 무대 앞 값싼 자리부터 귀족들은 물론 당시의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가 친히 왕림하여 연극을 관람하던 좌석에 이르기까지 런던의 모든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4대 비극은 160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햄릿'이나 '맥베스' 등의 소재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친숙한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 소재들이 셰익스피어의 손에서 흥미진진한 플롯과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문학성 짙은 대사, 그리고 스스로의 욕망으로 파멸의 길에 이르는 비극적 인물들로 재탄생되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리어왕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어릿광대 '풀'(Fool)이나 오셀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희대의 악인 '이아고'(Iago) 등 매혹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들 역시 그의 비극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 셰익스피어 문학이 누리는 명성과 위상은 19세기 말 대양을 누비며 세계 곳곳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했던 대영제국의 후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식민지 인도와 셰익스피어 가운데 후자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한 토마스 칼라일의 말은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자국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영국인들의 과도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 나아가 영연방이라는 거대 조직과 20세기 중반 이후 최대의 패권국가로 자리 잡은 미국이 함께 만들어낸 세계 제1 공용어 '영어'의 위상 역시 셰익스피어가 지속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사회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공연되어 왔다는 점이다.

원본 그대로이거나 재해석, 또는 변형을 거친 수많은 공연은 영어나 자국어로 공연됨으로써 '셰익스피어'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왔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화가의 화폭 속에서 아름답게 형상화된 오필리아의 모습이나 다양한 음악 형식으로 재탄생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의 작품이 주는 예술적 영감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가 여전히 세계문학의 중심에 서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대 영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