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장면을 담은 CCTV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왜곡된 현실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도 있었고, 피해를 막지 못한 무능한 경찰도 등장했다.

지난 25일 백주에 부산 한복판에서 일어난 '동래 묻지 마' 폭행사건(본지 지난 26일 자 6면 보도)은 영화 곡성의 '실사판' 같았다.

곡성도 동래 사건도 범행을 이해할 만한 동기가 없다. 곡성의 범인은 "악마의 조종을 받아서"고, 동래 사건 피의자 김모 씨도 "거리에 망상에 빠진 사람이 많아서"가 이유다. 김 씨는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와 20대 여성에게 둔기를 휘둘렀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아왔다. 서울 강남역 20대 여성 살해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건이 터지자 환자에 대한 격리 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모든 조현병 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보고 격리를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다. 만약 술에 취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국가가 모든 술을 없애고 금주령을 내려야 옳은가. 국가가 환자의 자유를 침해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는 '묻지 마' 범행을 저지르기 전 일주일 새 세 차례나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1일 망치로 주차된 차를 부순 혐의(재물손괴)와 절도로, 지난 23일에도 빵을 훔친 혐의였다. 김 씨는 "풀려나면 또 사고를 치겠다"고 했다. 그의 가방에는 흉기가 될 만한 소지품이 발견됐지만 연거푸 풀려났다. 사건을 돌아보면 경찰은 그를 격리해야 했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돼야 한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경찰이 방치한 셈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사회안전망이 김 씨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곡성에는 딸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혼자였다. 2000년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김 씨는 4년간 스스로 병원을 찾아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혼자서라도 현실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긴 '투병'으로 힘이 빠진 김 씨는 지난해 3월 이후 병원에 가는 것을 그만뒀다. 주민센터에서 지급하는 생계비도 이때부터 끊겼다.

묻지 마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사건을 환자 탓으로만 몰아가면 안 된다. 조현병은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있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다.

결국 '동래 묻지 마' 사건은 경찰과 행정이 김 씨를 내버려둬서 발생한 사건이다. 국가적 테두리에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1부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