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대청소가 필요하다. 세월이 흐르면 곳곳에 먼지가 앉고 녹이 슨다. 한번 마음먹고 주위를 둘러보라. 세월의 더께가 퇴적돼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무관심과 게으름을 걷어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몸이 흐느적거릴 정도로 고된 노동이 있은 뒤에야 마음이 정화되는 조그만 보상을 받는다.

어디 대청소해야 할 게 생활뿐이랴. 나라도, 사회도 묵은 때를 벗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에서 그 뜻을 배워야 한다. 자연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대청소를 한다. 비가 내리고 태풍이 부는 건 그런 작업의 하나다. 비가 갠 뒤엔 하늘도 땅도 물도 말끔해진다. 태풍은 열의 이동작업이기도 하지만 대청소이기도 하다. 바다와 강, 대기를 뒤집어 구석구석을 맑게 바꾼다. 대청소는 생명 유지의 비결이다.

대한민국을 대청소해야 한다. 그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고비마다 청소는 있어 왔지만 쌓인 적폐가 몸통을 갉아먹고 있는 느낌이다. 기중 정치가 가장 심각하다. 해방 정국에서 식민지 시절을 청산하지 못한 게 적폐를 쌓아올린 근본 원인. 김영삼 정부 시절 군부정권을 대청소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분야 대청소를 한 게 거의 전부였다. 군부는 청산했지만 구시대는 청산하지 못했다. 소위 3당통합, DJP연합이란 게 구시대를 존속시킨 온상이었다.

권력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목이 마른다. 기껏 마셔 봐야 배 하나인 것을 세상 물 다 마시려니 동티가 날 수밖에. 요즘 친박계의 움직임이 꼭 그런 모양새다. 4·13총선의 공천 파행 때부터 낌새를 알아봤다. 상식을 벗어난 안하무인이 차기를 겨냥한 과욕이란 것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꼴뚜기 망신 당하게 돼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다 그렇게 물고 물렸다.

노무현 정권 때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100년 정당'이라 했다. 그 정당이 지금 어디 갔는가. 이명박 정권도 퇴임 뒤 막후 정치를 원했지만 깨끗하게 청소당했다. 박근혜 정부라고 뭐 다를까. 총선 패배는 권력의 영속화를 위한 친박계 확장이 근본 원인이었다.

애초에 몰랐다. 새누리당이 의지가지없이 이리도 망가질 줄은. 보수의 장점은 견고함인데 모래성처럼 흩어질 줄은. 4·13총선이 끝난 지 벌써 40일이다. 그 40일 동안 눈먼 고양이 갈밭 헤매듯 종잡지를 못한다. 과반 의석은 차치하고 원내 1당조차 놓친 충격의 참패 탓인가. 혼이 뜨지 않고서야 일마다 어긋질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전국위가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진석 비대위와 김용태 혁신위를 출범시키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친박계 상임위원이 대거 불참함으로써 정족수 미달로 그리 된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즉각 사퇴했다. 위원장에 내정된 뒤 단 이틀 만의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동네 양아치, 패거리 독재당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싶다.

그 다음은 비대위의 무력화. 지난 20일 새누리당 중진 연석회의에서 비대위, 혁신위 2원 체제를 혁신형 비대위로 두루뭉수리 뭉쳤다. 그 구성은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일임하는 걸로 봉합됐다. 말이야 봉합이지만 혁신위, 비대위가 공중분해됐으니 실제론 누더기 기운 꼴이다.

이야말로 고추나무에서 그네를 뛰려는 짓이다. 옆에서 지켜보면 위태위태하다. 당 쇄신을 친박계에 맡기라는 건 쇄신하지 않겠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아직도 자신들이 쇄신의 대상인줄 모르는 모양이다. 지난 3년간 권력 유지만을 위해 '달팽이 뿔 위의 전쟁'을 벌이더니 이젠 고추나무 그네를 만드는 신통방통한 일들을 하고 있다.

총선 패배 뒤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에 앉힐 때부터 동티가 났다. 총선 다음 날 최고위원회가 그렇게 한 것이다. 총선 패배에 한몫한 원내대표가 당 재건의 책임자를 떠맡는다? 이건 잣 껍질로 배를 만들려는 황당한 시도다. 그걸로 거친 바다를 건너려는 건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아바타 정치'가 막히자 친박계는 대타로 정진석 카드를 선택했다. 한데, 그가 아바타를 거부하고 비박계로만 비대위와 혁신위를 채우자 그네를 묶은 고추나무를 흔들어댄 셈이다. 결국 권한을 일임했지만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새누리당이 회생하려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온갖 조화를 부려 고추나무 그네와 잣 껍질 배를 만든다 하여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인 물은 탁해지기 마련이다. 물을 맑히려면 새 물을 끌어오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이 탈당을 하든지, 친박계가 계파 해체 선언을 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갈등에 이어 상시청문회법 파동이 다시 일면 답이 없다. 협치는 물 건너 가고 달탕이 이뤄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치지형이 바뀌었는데 대통령은 내 갈길 간다 하고, 당 수뇌부는 말 고삐를 쥐었다, 놓았다 해서는 아예 물이 썩고 말 것이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