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그린 위에 섰다. 드라이버 샷을 하려는데 어느새 뒤의 팀이 와서 대기 중이다. 괜히 더 긴장되고 '실수하면 안 돼, 멋진 샷을 보여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립이 꽉 쥐어지며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여지없이 헤드는 '퍽'하며 뒤땅을 치고 공은 엉뚱한 곳으로 튕겨나간다. 어휴…연습장에서는 프로 못지 않았는데 필드에만 나오면 왜 이 모양일까?
분명히 연습 때에는 최고의 기량을 보였고, 그 어떤 적수도 없었는데 막상 시합장에 나오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있다. 대개 이들을 '연습용 선수'라 부른다. 선수는 아니지만, 우리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왜 시합에서는 연습 때와 같은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답은 바로 '심리적 요인'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불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불안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스포츠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다뤄온 주제인데, 그중에서도 반전이론(reversal theory)으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 한다. 이 이론에서는 선수의 운동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동일한 각성 상태를 전혀 다르게 지각해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라이벌이나 실력이 좋은 상대를 만날 때 또는 큰 대회에 출전하거나 관중이 많을 때 선수의 각성 수준은 높아지게 된다. 이때 수행자가 승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상황(목표지향적 상황)이라면 높아진 각성 수준을 불안으로 인식하게 되지만, 즐기려고 운동을 하는 상황(쾌락지향적 또는 과제지향적 상황)이라면 높아진 각성 상태를 기분 좋은 흥분으로 지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 선수 탓에 또는 대회 규모나 관중 등으로 인해 상승된 각성 수준이 메달이나 순위를 목표로 하는 선수에게는 불안, 초조 등을 유발해 수행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반면, 운동 자체가 좋아 즐기기 위해 경기를 하는 수행자에게는 높아진 각성 수준이 신바람 나는 흥분감을 선사하여 긍정적 수행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자신보다 기량이 크게 떨어지는 선수와의 대결이나 작은 대회 등의 출전은 각성 상태를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때 승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선수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되고,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하는 수행자는 이 상황을 지루하고 시시하게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운동목적에 따라 동일한 상황과 각성 상태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고 그로 인해 상반된 결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 직업 또는 전문적 선수들은 목표지향적일 수밖에 없으나, 취미와 건강을 위해 운동을 즐기는 우리는 쾌락지향적 수행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동료와의 한판 경기에 사생결단식으로 독기를 품고 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좋은 실력의 상대를 만나거나 조금 큰 시합에 나가게 되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조금만 각성 수준이 높아지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되어 자신이 가진 실력을 제대로 보일 수 없게 되고, 더 나아가 대인관계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목숨이라도 건 듯이 승부에 집착해 게임하는 사람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운동하는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유희를 위해 운동하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상대를 만나든 관중이 많든 적든 자신이 갈고 닦은 실력만큼 또는 그 이상의 결과도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자! 즐기는 사람을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동서대 레포츠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