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액션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미군이 나오는 영화를 자주 봤다. 미군의 최첨단 무기에 눈이 휘둥그레져 신이 나서 1시간30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적진에 생포된 전우를 구하러 가는 미군의 모습에서 '국가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영화 '람보2'를 보면 극 중 주인공인 '존 람보'가 포로를 구출하러 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상은 군인이다. 인민의 군대여서 이를 헐뜯거나 무시하면 국가가 용서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가짜 술이 판치는 중국에 군납 술은 가짜가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복지가 잘된 곳이 군이라고 한다. 군을 농락했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는 인식이 중국민 사이에는 퍼져 있다.

곽모(30) 중사는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원인 미상의 지뢰를 밟아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네 차례의 수술을 받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민간병원에서 100일 넘게 치료를 받았고 앞으로도 추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곽 중사와 가족들은 2000만 원에 육박하는 치료비 중 절반가량을 직접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빚까지 얻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힘들어 유서까지 썼다. 당시 군인연금법 시행령은 장병이 다쳐 민간병원에 입원할 때 30일을 초과하면 자비로 진료비를 부담하게 했다.

곽 중사의 어머니 정옥신 씨가 이러한 사정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1989년 강원도에서 작전 중 죽은 군견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판했다. 정 씨는 "당시 북한이 땅굴을 파오자 군이 헌트란 군견을 땅굴에 들여 보냈다. 군견이 지뢰를 밟고 죽으니 훈장을 주고 동상을 만들었다. 내 아들은 개보다 못한가"라고 말했다.

지난 8월 하재헌 하사와 김정원 하사가 비무장지대에서 작전을 벌이다 북한이 매설한 지뢰를 밟아 다리를 다쳤다.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를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는 소식에 여론이 들끓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가 즉시 진료비를 지원하는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곽 중사는 소급 적용을 받지 못한다.

'헬조선'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어린 시절 멋있게 본 영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정부는 그동안 천안함 사건 등을 통해 애국심을 강조했다. 우리 역사상 최고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부하 사랑은 남달랐다.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의 위패를 사당에 안치하자고 조정에 건의했다. 부하들이 최대한 전투에서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다. 거북선을 건조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추위에 떠는 부하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주기도 했다. 전투에서 숨진 부하를 위해 직접 제를 올리며 스스로 덕이 모자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군인은 흔히 하는 말로 자기 처지를 개보다 못하다고 자조 섞인 말로 넋두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군은 매년 간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골프장 운영에 600억 원을 쓴다고 한다. 한 해 10만여 명의 젊은이가 군에 간다. 국가 안보를 위해 피 같은 젊음을 군에서 보낸다. 입대고시라는 말이 있듯이 군에 가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이래서는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 정녕 우리 아들이 개보다 못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