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관한 글쓰기가 점점 힘에 부친다. 10여 년 전 일본의 대학으로 부임한 이후 열심히 뛰어왔지만 살벌해져만 가는 분위기에 용기가 자꾸 없어진다．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분들이 왜 소신 발언을 하지 않는지, 왜 의기소침해 있는지 의아했다． 10년 정도 지나니 반항해 봤자 자기만 아픈 현실이 보인다． 뒤늦게 철드는 건가．

한국을 향한 일본의 인식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상실감 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경청할 여유가 없었고, 미래로 향하고 싶은데 과거사로 발목을 잡힌다는 짜증도 있었던 것 같다． 거기다가 식민지배까지 받은 약소국이 감히 대든다는 경멸도 있었지 싶다．

아베 정권 집권 이후 일상이 바뀔 정도의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고유 전통과 문화를 지켜내자며 교과과정이 바뀌었고, 새삼 애국심을 강조하고, 기미가요(일본 국가)와 일장기 게양이 국립대 행사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방침에 비판적인 연구는 채택되지 않고 운영비를 지원받아야 하는 대학들은 보수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다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면 손해만 본다는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보존에 충실한 상식적인 반응이다.

일본에 비판적인 글이 실리고 나면 '돌아가라' '네 나라 걱정이나 해라' 등 협박을 받는다． 그땐 차라리 역으로 '그래, 한번 죽여 봐라'는 생각으로 평상심을 찾는다．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감히 반일하느냐는 비판, 외국인이면 남의 나라 일에 간섭하지 말고 주제나 파악하라는 주장 등． 아베 정권의 방향성이 매우 위험하다는 발언에 한국 대통령을 향한 성희롱 수준의 기사가 실린 주간지를 코앞에 들이미는 행동은 차라리 귀엽다.

나빠져만 가는 상황에 적당히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맞춰주면서, 적당히 만족하며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둥글둥글하게 산다는 건 상당한 노력과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고 갈등보다는 화합이 바람직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일전에 만난 도쿄대의 와다 하루키 선생에게 '어떻게 견디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지만 '크게 신경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무신경이 해답일 수 있는 건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코스로 달려가고 있는 일본을 정말 말리고 싶다． 제삼자지만 내 인생의 황금기 10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일본의 정책에 내 조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미움에서 나온 간섭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관심에서 나온 염려는 진지한 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곳 히로시마에서 첨단무기를 사용하는 현대전으로 인류가 자멸할 수도 있다는 절체절명의 공포를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다. 전쟁의 비참함을 모르기 때문에 최선의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듣기엔 상당히 섹시한 말을 해댄다. '두 번 다시'는 절대로 없다.

아베 정권이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며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안보법안은 동아시아 안보를 오히려 해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집권 자민당은 미군과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며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하고 일본 석유 수입량의 8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제거 작업에 자위대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일본은 1947년 평화헌법이 시행되고 난 3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에 기뢰제거 작업 병력을 파견했다． 1950년 10월 6일 시모노세키항에 집결한 배 16척에는 1200명의 일본군이 승선했다. 이들은 행선지를 모른 채 출항했고, 그 가운데 나가타니라는 21세 청년은 인천 부근 바다에서 작업 중 사망했다． 이런 내용은 29년 동안 국가기밀로 봉인돼 역사의 이면에 숨겨져 왔다． 평화헌법의 나라 일본으로서는 밝힐 수 없는 어두운 과거사다.

타인에게 투사된 자신의 모습에 아베 정권의 안보논리가 매몰된 것은 아닌가. 자기 속의 의심과 불안은 타자의 도발과 폭력에 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신뢰와 평화 공존은 경쟁과 긴장의 상존 상태로 대체된다． 지금 세계정세가 불안정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았다．

이럴수록 비참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평화헌법의 정신을 존중해 폭력과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이런 노력이 역사적 비전이고 인류사에 대한 공헌이 아닌가．

지금 코스대로 일본이 나간다면 걱정이 태산이다. 누구라도 브레이크를 걸어서 조금 더 신중히,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보기를 권해야 할 터인데. 그나저나 나도 조영남 씨처럼 걱정 없이 살고 싶다．

히로시마 시립대학교 평화연구소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