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해운대 미포~옛 송정역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를 결국 상업개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부지의 소유주인 철도시설공단은 다음 달 중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상업개발을 위한 민간 사업자 공모에 들어간다고 한다. 천혜의 절경 미포~옛 송정역 철길의 상업화가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상업개발을 막기 위한 부산시민들의 분주한 노력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폐선부지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서 시장의 공약 파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폐선부지를 시민 힐링공간으로 돌려받기 위한 시민들의 열망과 노력을 서 시장은 상업개발을 위한 들러리로 만들어버렸다.

시민들은 지난해 4월 13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날 서병수 국회의원을 비롯한 부산시장 예비후보 6명은 '동해남부선 옛 철길 시민 환원' 공동공약 합의문에 서명했다. '시장이 되면 폐선부지를 매입해서라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후보를 비롯해 6명 모두 상업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방선거에서 보기 드문 공동공약이었다. 이날 시민들의 환호를 아직 잊지 않았는데 서 시장 취임 1년도 안 돼 상업개발이 불가피하다니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약속 어기기를 손바닥 뒤집듯 한다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여론에 떼밀려 어쩔 수 없이 시늉만 냈다가 예정된 수순대로 갈 길을 가는 것인가. 이는 시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민들을 두렵게 생각한다면 서명까지 한 시민과의 약속을 헌솥 깨듯 하겠는가.

부산시와 철도시설공단은 표면상 민관 공동기구인 라운드 테이블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라운드 테이블은 지난해 9월 출범 당시부터 형식적 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란이 있었다. 전문가 주민 시민단체 등 37명 중 기존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 자문위원이 대부분이었다. 최대 쟁점인 '상업개발이냐, 시민공원화냐'에 대해서는 전문적 검토는 물론 진지한 토론도 없었다. 겨우 몇 차례 형식적 회의를 열고는 부산시가 민자개발사업 공모계획안을 보냈다고 하니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런 부산시의 행태는 라운드 테이블 역시 구색 맞추기로 구성만 해놓고 들러리로 삼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인원구성부터 회의 진행까지 무엇 하나 투명하게 진행된 흔적이 없다. 이것이 서 시장이 시민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방식이다. 1970, 1980년대 개발시대에나 볼 수 있는 가장 저급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라운드 테이블을 시민여론이라며 상업개발로 몰아가는 것은 원천 무효일 수밖에 없다.

미포~옛 송정역 폐선부지는 지난해 3월 시민들에게 개방된 이후 하루 1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청사포에 문화예술창작공방이 줄을 잇고, 구덕포 등에 인디밴드 공연까지 곁들인 카페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곳이 상업개발된다면 자연 훼손은 차치하더라도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연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좋은지는 부산시민공원은 잘 보여준다.

우리는 하야리아 부대 부지가 어떻게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주한미군과 정부와의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줄다리기와 수많은 라운드 테이블이 있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 활동가들의 아이디어들이 종합된 결과다. 지금 부산시민공원이 부산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가족 연인 친구 등 모든 시민이 평화롭게 여유를 즐기는 것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이 부지가 상업시설로 개발됐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서 시장은 모든 시장 예비후보와 함께 서명한 공동공약을 시장직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옛 철길을 오롯한 힐링공간으로 갖는다는 시민들의 부푼 꿈을 짓밟고 철도시설공단과 상업개발 절차에 들어간다면 전 시민적 저항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는 시민들이 함께 나서 지킬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것은 부산시민들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며 세계인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