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었습니다. 국제금융위기로 국가 전체가 한참 힘들었던 시기였지요. 부산이 가진 지형공간과 지역경제 여건상, 기존의 재개발, 재건축과는 다른 새로운 도시발전의 개념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진 것을 바탕으로 다시 살려간다는 의미를 가진 '재생'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다가왔고, 당시 국제사회에서 회자되던 '창조도시론'이 부산의 미래상으로 받아들여졌지요.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창조계급), 소프트웨어 산업을 활성화 시키고(창조산업), 창조계급과 창조산업을 수용하고 담을 수 있는 유휴공간을 보전·정비하자는(창조공간) 창조도시론은 부산에 정말 어울리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듬해에 '당신(창조도시본부)'께서 탄생되었지요. 명칭과 기능 모두가 매우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본부장 직위를 내부 인사가 아닌, 외부에서 그것도 사회학자를 등용시켜 새로운 시대정신과 시정의 미래 비전을 추구했던 당시 상황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혁신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계급, 창조산업, 창조공간을 하나의 성장 동력체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체제는 갖추지 못했습니다. 또 창조도시론은 50만 이하의 도시에 적용되는 이론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지난 4여 년 동안 세 분의 본부장님께서 열정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본부장님들과 수백 명의 직원 모두가 이룬 일이 참 많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 성과는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추진'이었습니다. 경사가 급한 도시에서 기존의 도시공간을 모두 밀어내고 똑같은 모습의 아파트를 짓는 것은 부산에 그리 이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업이었습니다. 산복도로가 그냥 도로가 아니라 100만이 넘는 시민이 살고 있는 도시 속 고향 같은 지역의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곳이 대한민국 근대사에 있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또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 일이었습니다. 전국에 모범이 된 그 일을 힘들게 추진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는 '부산시민공원을 탄생시킨 일'이었습니다. 군부대를 공원으로 바꿔 17만 평의 평지 공원을 시민에게 제공한 일은 부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일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기본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꿈이라 여겼던 시민공원이 탄생된 것입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 세 번째는 '행복마을 사업'을 꼽고 싶습니다. 변화나 발전을 포기했던 40여 개가 넘는 도시마을이 다시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과 주민을 이어주는 '코디네이터'와 '퍼실리테이터'라는 직업을 탄생케 함으로써 휴먼웨어(사람)에 재원을 투자하는 계기를 만든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기업들과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기업들을 탄생케 한 것도 미래 부산 발전의 디딤돌을 놓는 새로운 시도였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감천문화마을, 부평깡통야시장, 초량 이바구길, 유치환의 우체통, 시민공원 뽀로로도서관, 이바구공작소, 산복도로 버스투어 등 부산의 신(新)명물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 '시민'에 대한 기본 생각과 역할을 깨닫게 해준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행정체계상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또 요식 행위가 아니라 제대로 시민의 역할을 발굴해 내는 것이 왜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당신께서 시민들과 함께하고 하려 했던 일들은 부산 변화의 시금석이 되었고, 앞으로도 큰 힘이 될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당신의 역할이 마감되는 순간이 곧 다가옵니다. 성과도 컸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일도 있었고, 기존 관행을 뛰어넘지 못해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그런 혁신적인 변신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왕 하는 일인데 좀 더 집중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소외된 부분을 따뜻한 관심의 대상으로 바꾸게 한 당신의 선한 노력들은 그동안 부산이 했던 그 어떤 정책보다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21세기, 특히 현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모토로 국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창조도시론'에 내포된 가치들이 무척이나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떠난다고 하니 참 아쉽습니다. 당신은 사라지지만, 탄생 초기에 당신께서 기대했던 이념들은 올바르게 계승되면 좋겠습니다.

그 첫째는 '창조적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부산은 두드러진 하나보다는 조각들이 함께 조화될 때 빛이 나는 도시입니다. 외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부터 지역산업들, 부산사람들의 기질과 살아가는 삶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런 부산의 특성을 잊지 말아 주길 부탁합니다. 둘째는 '인문학적 발상이 어울리는 도시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열심히 했던 일 중 하나였지요. 부산에 담겨있는 인문학적 콘텐츠와 정서를 맘껏 풀어갈 수 있는 여건을 지금보다 대폭 넓혀 가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많은 창조계급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산의 도시 상황은 실험적 발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 사람들이 청년이라면, 또 타지에서 부산으로 오고픈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좋겠지요. 마지막은 '부서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도전을 지속하는 일'입니다. 리드 그룹의 판단과 역할이 작용되는, 어찌 보면 당신께서 꼭 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벽을 얼마나 크게 또 제대로 허무느냐가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인 융합도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고민했던 이 일들을 어떤 부서가 맡을지는 모르지만, 꼭 이어져 가길 바라봅니다.

이제 편지를 마치려합니다. 부산 시민들은 창조도시본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산에 살고 있음을 깨우쳐 주었고, 부산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 무던히도 노력했던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