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왝 더 독(Wag the Dog)'은 베리 레빈슨 감독이 1997년 연출한 영화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의미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느낌을 주는데, 영어로는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선물시장에 의해 현물시장이 좌지우지되는 현상이 나타날 때 이런 표현을 쓴다고 하는데, 주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런 표현이 주식시장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상당히 이탈해 있을 경우에 사용된다는 사실 정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베리 레빈슨의 영화에서 '왝 더 독'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펼치는 정치적 연막작전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현직 대통령 진영에 엄청난 악재가 발생한다.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여학생을 성추행한 것이다. 재선을 확신하고 있던 대통령의 참모진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급히 해결사 브린을 호출한다. 참모라기보다는 협잡꾼에 가까운 인물인 브린은 전쟁을 일으켜 성추행 스캔들을 덮어버리자는 황당무계한 계획을 내놓는다. 물론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만 연출해도 선거일까지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 진영은 이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가짜 전쟁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먼저 미국이 핵무장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가상의 상황이 설정된다.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로는 미국 국민들에게는 생소한 알바니아라는 국가가 선택된다. 군 수뇌부 인사들이 기지로 이동하는 정황을 언론에 흘리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B-3폭격기가 가동될 것이라는 소문도 만들어낸다. 상황을 더욱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 미국이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영화인들도 동원된다. 영화 제작자 모스가 동원한 할리우드의 기술자들은 멀쩡한 배우 지망생을 알바니아 난민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서 영화 스튜디오를 참혹한 전쟁터로 변모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현장감 넘치는 가짜 전쟁 영상이 만들어진다.

좀 오래된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요즘 정치판이 이 영화 못지않게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의 부당한 인사 개입 문제를 조사하던 중 한 공무원이 답변을 하고 있던 상관에게 '여야의 싸움으로 몰고 가라'는 쪽지를 보냈다가 들통이 나 파문이 일었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부터 최근의 이른바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비선 실세 인사의 국정 농단 의혹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진실을 밝히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본말을 뒤집어 진실을 호도하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도리어 역정을 내거나 다른 사람을 나무라는,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는 사례도 잦아지고 있으며,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증거나 증언들이 제시되어도 관련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식의 발언으로 상황을 희화화시키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왜 우리 정치인들이 이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영화 '왝 더 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교묘한 술수로 본말을 전도시킴으로써 재미를 본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정적(政敵)이나 국민들보다 고단수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왝 더 독' 해결사 브린의 기만술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의 제목처럼 꼬리가 개를 흔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을 위해 정반대의 결말을 가진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부정한 사실을 감추고 국민을 기만한 대통령이 진실이 규명되면서 끝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왝 더 독'은 허구(fiction)이지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실화다.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