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을 다룬 작품을 들자면 윤흥길의 '완장'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완장'은 저수지 관리인 '종술'을 통하여 권력의 속성과 그 허망함을 해학적 필치로 그려 낸 작품이다. 객지로 떠돌며 쌈질로 잔뼈가 굵으면서 '별'까지 단 종술이, 완장을 찬 다음 안하무인격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우습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권력이 인간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그의 또 다른 소설 '매우 잘 생긴 우산 하나'에서는, 주인공 김달채 씨가 지닌 우산을 주변에서 '첩보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상천외의 신발명 무기'쯤으로 여기게 되고, 점차 이런 시선에 길들여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 윤흥길은 '완장'뿐 아니라, 왜곡된 권력에 길들여진 세상에서는 사물 또한 권력이 될 수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개한 두 작품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소설 속의 이야기로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권력지향성과 권력에 대한 반응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들이 발표된 80년대와 오늘의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심화되거나 교묘해졌으며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씨름협회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입씨름 말고 실제로 씨름대회를 한 번 하라"는 씨름협회장의 조크를 들은 여당대표가 "우리 면전에서 그렇게 조롱한다는 게 과연 기분이 좋으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세월호 유족 몇 명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으로 꽤나 시끄럽다. 판이하게 다른 두 사건이 묘하게도 '완장'과 맥이 닿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보기에 따라서 씨름협회장의 말이 다소 과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애교 섞인 질책으로 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러게요, 아니할 말로 씨름이라도 한 판 해서 이 난국을 해결했으면 싶습니다. 허허"하고 웃고 말았으면, 속된 말로 스타일 구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세월호 일부 유족도 마찬가지다. 비통하고 답답한 심경이야 말로 다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분노의 대상이 일반 국민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근대사는 완장으로 점철된 얼룩진 역사였다. 조선시대의 양반이라는 신분적 완장에서, 일제강점기, 6·25 동란, 개발독재의 시대를 거쳐오며 줄곧 군국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완장들의 횡포 속에 민초들은 짓눌려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완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귀한 목숨과 피와 땀을 대가로 지불했던가. 민초들의 뜻에 반한 권력이나 왜곡된 완장이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삶을 위축시키는지 뼈져리게 느낀 우리 민족이 아닌가.
과거의 아픔이 교훈으로 치환될 때에만, 아픔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진실을 말하기보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지식인들이 숫자가 늘어날수록, 부정한 권력과 비정상적인 완장을 휘두르는 무리들의 숫자 또한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가 얻은 고귀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권력이나 완장도,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알고도 모른 체 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체 눈을 감아서도 안 될 일이다.
다시 한 번 완장을 생각한다. 권력의 속성을 생각하게 된다. 모름지기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필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면 권력화되고, 권력화된 이후에는 본질을 잃어버리거나 가치전도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난다면 본질은 망각될 수밖에 없다. 아름답지 않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악취를 풍기다 결국에는 패망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진정한 권력, 아름다운 완장은 군림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 작가 윤흥길은 완장이 본래 미풍양속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과, 진정한 권력은 눈에 뵈지 않음을 설파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팔에 자신도 모르게 둘러진 '완장'은 없는지, 혹은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는 힘이 사실은 아름다운 권력이 아니라 서푼어치도 되지 않는 '완장'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부산소설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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