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단어 중 'austral summer'라는 말이 있는데 '남반구 여름'이라는 뜻이고 달력으로는 12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를 말한다. 호주가 여름일 때 우리나라는 겨울이어서 두 나라는 계절이 반대이다. 지구에서의 계절이 나라에 따라 다르고 정반대의 계절이 공존하는 현상은 지구 회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해양동물 중에 높은 수온을 선호하는 종들은 여름에 왕성한 증·번식을 하지만 겨울이 돌아오면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여름과 겨울이 남북반구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 지구이기 때문에 남북반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세계보편종(cosmopolitan species)은 한쪽 반구에서 성장이 왕성히 일어날 때, 다른 반구에선 간신히 살아가거나 심할 경우 휴지기로 들어선다. 양극종(bipolar species)은 남반구 위도와 북반구 위도가 같으면 동일한 종이 서식한다는 개념이다.
필자가 미국 플로리다에 1년간 방문교수로 갔을 때 아열대 지역인 멕시코만의 물고기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온대 지역인 우리 한국의 어류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사한 종은 돔 종류인 스내퍼(snapper)와 브림(bream) 정도만 있고 그 외엔 거의 다른 종류의 물고기만 서식하고 있었다. 한편, 남극바다는 최고수온이 2도 이하인 냉수괴여서 온대 및 열대 지역과는 다른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 때 호주를 방문해 서식하는 물고기들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시드니와 멜버른은 겨울이지만, 한국과 경위도가 유사해 양극종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 지역에는 드러머(drummer)라는 종이 한국인 낚시꾼에게 큰 인기가 있는 종으로, 한국의 벵에돔과 거의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회 맛도 벵에돔과 구별이 안갈 정도로 유사해 한국 사람들에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또한 스내퍼(snapper)라는 우리나라 참돔과 유사한 종이 살고, 브림(bream)이라는 우리나라 감성돔과 유사한 종이 있긴 해도, 호주에서 피시 앤 칩스 (Fish & Chips)의 최고 원료종인 바라문디(barramundi)와 그루퍼(grouper)를 비롯해 블랙피시(blackfish), 트래블리(travelley), 킹피시(kingfish), 테일러피시(tailorfish), 엔젤피시(angelfish) 등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구경할 수 없는 종이 대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물고기에 관한 한 양극종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나라 연안에는 적도에서 발원한 북적도 해류가 시계방향으로 인도네시아, 남중국해를 거쳐 우리나라로 올라오고, 호주 연안은 남적도해류가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흘러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서로 다른 수괴를 형성하는 것이 호주 연안과 한국 연안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다르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이와 같이 연안어류가 지역마다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수온에 따라 분포가 확연히 달라지는 가운데, 해류에 의해 장벽이 생겨나는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유학시절, 남극탐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환하려 할 때, 탐사선이 남아연방 케이프타운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유럽인들이 케이프타운으로 휴가를 많이 와서,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잡기 어려웠다. 미국본부에서 귀국 비행기 잡힐 때까지 무기한 관광여행을 하라고 해서, 1주일간 정말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마침내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파리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그런데 짐이 분실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3일 후에 와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케이프타운에서의 차림새인 반팔 반바지차림으로 파리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은행을 찾아 프랑화를 바꾸기 위해, 새벽 길거리 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영어로 "뱅크(bank)가 어디 있냐"해도 도무지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는 뱅크를 "뺑", "빵", "빵크" 등 불어로 발음될 거 같은 소리를 해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파리의 2월은 왜 이렇게 추운지, 입술은 시퍼래져 가고, 몸은 덜덜 떨려서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최후 수단으로 국제 통용어라고 짐작되는 "머니(money)" 하면 은행을 가르쳐 줄 거 같아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건널목에 서서, 이 사람 붙잡고 "머니, 머니", 저 사람 붙잡고 "머니, 머니" 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때 그 모습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완전한 거지모습 아닌가? 이 또한 한 지구에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해양대 해양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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