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본 걸로 하고 넘어갈란다. 이것도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라 카는데 대강 넘어가줘야 되지 안컷나. 다시는 이런 일 없것지." 작년 가을, 해운대 관광리조트(이하 엘시티) 개발 사업에 대한 중국 'CSCEC 그룹'의 건설과 지분투자 협약이 발표된 후 시민 모두는 진흙탕 같았던 5년여 동안의 논쟁이 빨리 마무리되길 바랐다. 엘시티에 많은 모순과 문제가 있음을 시민들은 알고 있었고 또 해운대가 병들어갈 수 있음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시민사회에서 남긴 엘시티와 관련된 2011~12년의 문건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100층급 빌딩 3동(101층 1동 및 85층 2동) 총 66만6077㎡의 연면적을 가진 엘시티가 해운대 백사장 50m 옆에 설 수 있게 된 과정이 낯 뜨거울 지경이었다. 부지매각 과정과 민간사업자 선정의 의혹, 개발구역 확대, 중심미관지구에서 아파트 유치가 가능한 일반미관지구로의 용도 변경, 해안지역의 60m 높이제한 해제, 건폐율 완화, 교통영향평가 미수립, 환경영향평가 대상 제외, 부동산 투자이민제 도입 등 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마치 불법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으로 일관된 이곳은 정말 의문스러운 곳이었다.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현장 주변을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답답함과 드는 의문의 주 원인은 과밀이나 차폐의 문제보다는 해운대라는 부산의 자존심을 중국에 내준 것 때문이었다(7억 원 투자 시 거주 자격을 부여하고 5년 후 영주권 제공). 이런 것을 과연 외자 유치라 부를 수 있는지, 이 때문에 발생할 시민들의 심적·정신적 후유증은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사장 주변 현장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의문은 5000여 대의 주차장이 신설되고, 1일 약 1만 대의 교통량이 유발됨에도 연접도로의 폭 확장이 교통 대책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지역의 간선도로와 연결되는 도로 신설이나 해운대 전체의 교통체계와 도로구조 개선 없이, 출퇴근시간이나 주말이면 지금도 체증이 반복되는 이곳에 이런 매머드급의 개발 허가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해답은 교통영향평가를 제대로 받지 않고 건축위원회 산하의 교통소위를 통해 교통계획을 통과 시킨 건축승인 과정에 있었다. 서울의 제2롯데월드는 개발 후 발생할 교통문제의 해소를 위해 사업자(롯데그룹) 측이 2700억 원을 투자하도록 했는데, 부산은 도로확장비조차도 시민 세금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교통영향평가는 사업자 부담의 원칙하에 사업 시행 후 발생할 교통문제의 해소책을 세우게 하는 정책이다. 개략 추산 1조 원의 순이익을 벌게 될 사업자 측이 이 문제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시민들은 엘시티로 인한 반(反)의 문제들이 모래사장 곁에 마천루들이 들어서며 발생하는 환경피해, 높이 제한 해제에 따른 난개발 문제, 조망권 침해 등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이 문제들만 묵인하면 지겨운 논쟁이 그칠 줄 알았다. 그래서 참고 참았다. 교통문제는 당연히 확실한 대안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동해남부선 폐선 터 일부를 엘시티 교통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로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무슨 소리인가. 누가 이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가. 괴소문의 핵심 대상은 엘시티와 맞닿아 있는 약 300m의 폐선 터 구간인 듯하다. 폐선 직후 우동역~미포오거리 구간 약 5㎞를 산책로로 만든다며 철로를 허겁지겁 걷어내던 공공의 행태를 보면서, 미포오거리에서 송정역까지 4.8㎞에서 관광개발사업을 하겠다는 난센스 같은 소동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지난주 시민참여단을 만들고 라운드테이블을 구성하여 4.8㎞ 구간에 대해 상업개발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부산시의 발표를 접하면서 이렇게 싱겁게 물러날 일을 관광개발권을 따겠다고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공모에 참가했던 지역 언론과 공공기관들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진다. 묻고 싶다. 진짜 관광개발이익이 탐나서 무리수를 두었는가. 정확히 얘기하자면 폐선 터 4.8㎞에 대한 관광개발 포기와 엘시티 주변 폐선 터의 도로 개설이 깊은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도입되며 중국자본이 해운대로 몰려드는 것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에게 두 번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변질된 외자 유치는 부산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 폐선 터를 도로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의 논리를 세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폐선 터는 어떠한 이유로도 절대 손대지 말자는 약속 지키기에 대한 것이다. 지난 4월 13일, 부산시장 후보자들 모두는 폐선 터 전체 구간을 맘대로 개발하지 말자는 협약을 했다. 그 약속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다. 둘째, 엘시티로 인해 발생할 교통 후유증에 대한 종합 대책에 대한 것이다. 연접도로 확장 등의 미봉책이 아닌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는 해운대 일대의 교통 혁신의 방안을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과부하 상태에 이른 해운대의 지역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외부자본과 가진 자, 그리고 소수를 위한 지금 같은 스타일의 개발 추구는 어렵게 간직해 온 해운대의 강점들을 영원히 잃게 할 것이다. 풍문이 사실이라면 거짓과 술수로 시민들을 유린하는 공공은 비난 받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도시를 맘대로 주물럭거리려는 적폐는 이젠 사라져야 한다.
폐선 터의 단 1m라도 도로에 넘겨주는 그런 일은 발생치 않을 것으로 믿는다. 지난 4월 13일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해운대는 공의로 채워진 '정직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의 환경과 경관 때문에 발생한 이익은 반드시 시민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공평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해운대는 부산 시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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