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40년 지기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뚱보'라고 불렀다. 코끼리 엉덩이처럼 둥글둥글 살이 오른 상체와 하체, 손발이 보이질 않는 기형적인 체형, 도무지 비례감이라곤 느낄 수 없는 펑퍼짐한 이미지. 뭘 먹고 저렇게 살이 찐 거야. 얼어터진 손을 호호 불며 서있는 꼬마 아이에게 듣기에 따라서는 모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을 들었으니 첫 대면 자체가 유쾌하지만은 않았으리라.

뚱보라고 하였으나 나의 벗은 검박한 기질의 소유자다. 간혹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목도리를 둘러 멋을 부릴 때가 없지 않으나 대체로 그는 번거로운 꾸밈을 하지 않는다. 마흔 해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단벌 외투와 난방비를 전혀 책정하지 않고 혹한을 나는 생활태도는 차라리 고행을 하는 수도자를 닮았다고 할까. 이런 기질은 그가 그 흔한 비만 클리닉이나 다이어트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긴, 그는 운동을 할수록 체중이 느는 역설적 체질의 소유자다. 살이 점점 더 붙어 원형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오히려 자신의 실존에 점점 더 근접해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벗의 직업은 청소부. 그는 겨울에만 청소를 하는 일종의 계절노동자에 속한다. 구청 청소과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청소용역업체에도 고용된 바 없지만 눈만 내리면 거리를 청소하는 일로 분주하다. 누구도 시키지 않는 일을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생업으로 삼아왔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를 피울 줄 알던 까마득한 설화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군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나의 벗은 자신의 일이 청소업에 해당된다는 걸 모르고 있는 눈치다. 그저 눈이 내리니 내리는 눈이 무료하지 않도록 함께 노는 것에 불과하다는 투다. 놀이가 일이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갸우뚱, 그는 좀 멋쩍은 표정이 역력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일과 놀이의 행복한 합일을 본다.

눈에 관한 한 뚱보답게 욕심이 많은 그는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달려갈 길도 먼저 가보고, 폐지를 잔뜩 인 수레가 지나갈 길도 먼저 가보고 싶어 한다. 짓궂게 얼어붙은 길이 꽈당 엉덩방아를 찧게 하기 전에 눈을 도르르 말아 한쪽에 치워둬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오지랖이 넓은 그는 눈길이 빙판이 되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잘한 사고들 걱정으로 전전긍긍이다. 무엇보다 그는 눈 속에 길을 트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정담을 나누며 눈을 치우는 일의 즐거움을 조금씩 잃어가는 게 여간 슬픈 게 아니다.

지난 여름 장맛비가 한창일 때 비가 잠시 멈춘 틈에 바닥에 떨어진 잎을 쓸어담고 있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잠시 뒤면 다시 비가 내려 바닥을 어지럽힐 텐데 공연한 일을 하는구나, 도시에는 엄연히 청소부들이 따로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시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하던 일을 마저 하던 노파의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 눈빛은 태풍 앞에서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 아기의 잠자리를 살피듯 모종 쪽으로 흙을 끌어와 덮어주는 농부의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것이 공연한 일이라면, 세상에는 이와 같은 공연한 일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의 벗에게는 그런 공연한 일들의 찬란함이 머문다.

세상일에 서툴고, 사람 만나는 일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내게도 이런 벗이 있으니 마냥 실패한 삶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나는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일 년 사이 흰머리는 더 늘었고, 숱한 곡절들로 심신은 피로하기 짝이 없지만 그 앞에 서면 나는 혹한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소년으로 돌아간다.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겨울에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 년의 세 계절은 그를 그리워하며 지낸다. 봄 여름 가을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다. 이 반가운 벗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겨울은 견딜 만하다.

나의 친구 뚱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름하여 눈사람, 이라고 부른다.

시인·실천문학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