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전학의 창시자 그레고르 멘델은 어릴 때부터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했다.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 공부할 수 있는 방편으로 사제의 길을 택해 신학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정규직 자격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임시 교사 등을 전전했다. 시험공포증 때문이었다. 29세에 빈 대학 유학 길에 오르는 행운을 잡아 물리학 교수가 되려는 꿈을 꿨다. 그러나 학위를 따는 데 실패했다. 역시 시험공포증 때문이었다.

좌절한 멘델이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수도원뿐이었다. 그는 뜰에서 화초를 돌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멘델의 3대 유전법칙은 이런 사색의 결과다. 비록 교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공부한 물리학이 입자적 유전법칙을 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멘델은 유전인자를 혈액 같은 액체가 아니라 모래 같은 입자로 봤다.

공포는 일반적인 불안과 달리 특정 대상에 결부됐을 때 생기는 두려움을 말한다.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신경질환 증세로 나타나거나 심하면 운동신경·혈관·내장 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나 폐쇄공포증은 비교적 흔한 경우이고, 끝이 뾰쪽한 것을 보면 질겁하는 선단(先端)공포증,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는 적면(赤面)공포증 등도 있다. 시험공포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한국 초중고생의 60%가량이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엊그제 미국 하버드대 폭발물 허위 신고 소동은 한국인 재학생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심리학과 2학년인 김모(20) 씨는 시험 시작 30분 전에 '4개 건물 중 2곳에 폭탄이 설치됐다. 빨리 찾지 않으면 폭발할 것이다'는 내용의 협박 메일을 교내 경찰 등에 보냈다. 곧 하버드대 전체 건물에 대피명령이 떨어졌고, 기말시험은 모조리 연기됐다.

FBI에 체포된 김 씨는 '기말시험을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징역 5년 이하 또는 최대 25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의 벌금 형을 선고받게 된다. 아주 똑똑한 친구였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지만, 시험공포증 탓에 자칫 인생을 망치게 생겼다. 훗날 멘델처럼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