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논객인 오마에 켄이치가 쓴 '일본의 논점'이라는 책을 보면 '퀄리티(quality)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국가는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의 신흥국이 아니라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싱가포르와 같은 인구가 500만~1000만 명 정도의 소국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나라들은 정치, 교육, 국민생활 등에 있어 높은 질을 누리는 '퀄리티 국가'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경우 인구는 800만 명밖에 되지 않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이 세계 톱이다. 선박용 엔진, 식품, 인재파견, 제약, 시계, 은행 등 세계 초일류기업들로 가득 차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 국가는 단순히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높은 '퀄리티'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은 그동안 서울이나 해외의 대도시를 벤치마킹해서 거대도시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해운대를 중심으로 홍콩 냄새가 나는 스카이라인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산업동력 확보 차원에서 선박, 기계, 자동차 등을 육성해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뉴욕과 같은 금융도시를 꿈꾸며 문현금융단지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항만물류도시로 성장시킨다는 전략으로 신항을 만들었고,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부산은 확실히 1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외지 사람들이 부산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공치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산이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그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 또한 부산발전모델이 해외에서 성공담으로 거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혜의 조건을 갖춘 부산'이라고 치켜세우는 해외석학들은 있지만, 부산이 걸어온 길을 세계가 참고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아마도 이는 부산류의 발전형태는 이미 외국 유명도시가 이룩한 경험이 있는 것이고, 또한 국내 여느 도시도 추구하고 있는 비슷한 성격의 것이기 때문일 게다.
부산이 각광받는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부산만의 독특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독특한' 매력에 취해 모여 들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의 특색을 잘 살린 '퀄리티 도시' 부산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성의 밑천은 지리적, 자연적 환경이다. 이는 세계 어느 도시도 모방할 수 없는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다. 그러므로 이를 잘 살려 자연친화적으로 도시를 가꾸지 않으면 도시의 질이 차별화될 수 없다. 해운대가 천지개벽을 했다고 하지만 홍콩식 '스카이라인'이 부산 고유의 '자연라인'을 충분히 배려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독특성을 파괴하면 평범성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부산 특유의 개방성과 화끈함을 창의산업육성과 연결시키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 각국의 아이디어쟁이들이 부산을 '상상실현의 허브'로 동경하며 몰려 올 수 있도록 화끈하게 밀어주는 것이다. '국제 벤처 특구'를 지정해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종합지원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든 면에서 넉넉하지 못한 벤처기업가들에게 이러한 지원은 큰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 배부른 대기업을 필사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보다 훨씬 손쉽고 더 장래성이 있다고 본다.
부산이 '퀄리티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높은 안목의 행정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공무원을 이미 많이 확보한 부산이지만, 그들의 안목을 지속적으로 높여주고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만들어 주는 특단의 조치가 절실해 보인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은 공무원들에게 초일류기업에 준하는 대우와 자기발전 기회를 제공해 주는 대신 세계에서 가장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요구했다고 한다. 상상력 풍부한 행정가들이 있을 때 질 높은 도시 구현을 위한 수려한 정책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남식 시장 10년이 이룬 도약의 부산이 앞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부산 특유의 발전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부산이 진정한 경쟁력 있는 도시로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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