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참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를 두고 일본의 저명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일을 "쌍둥이 국가"라고 표현했다. 양국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양국은 그간 경제성장을 위해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 수출중심의 산업구조,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보호무역주의, 대기업 중심의 선단호송식 생산 사슬 등이 매우 닮았다. 물론, 우리나라가 일본의 경제개발 모델을 많은 부분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경제발전 과정에서 목격되는 현상도 놀랄 만큼 흡사하다. 삼성 스마트폰, 현대자동차, LG 가전제품이 전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 있다. 세계 어느 공항에 가도 한국 기업의 간판이 없는 곳이 없다. 한류 스타들의 세계적 인기는 연일 상종가이다. 우리나라가 단군 이래 이렇게 세상에서 인정받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붐'조차 놀랄 만큼 일본의 과거 경험과 닮았다. 일본기업들도 1980, 90년대에는 무척 잘나갔다. 세계인들은 한때 소니 워크맨을 끼고 어깨를 으쓱해 했었고, 토요타 승용차를 몰면서 폼을 잡았다. 일본 대중음악은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었다. 필자가 어릴 때는 일본 패션을 따라 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일본의 과거 영광을 한국이 시차를 두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일본은 맥이 빠져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물론 아베정부가 들어서서 아베노믹스를 내세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말이다. 일본과 거의 비슷한 길을 걸어온 한국도 몇 년 안 가 이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올해 들어 벌써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며 우려하는 것을 보면, 이런 '한국 붐'을 오래 누려보지도 못하고 혹 주저앉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과 일본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국제화된 인재들이 세계 각국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와 전쟁 등을 거치면서 또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해외에 나가게 된 우리 동포가 이미 720만 명에 이른다. 그것도 소위 4강이라고 불리는 미·일·중·러에 고루 퍼져있다. 이도 모자라 더 좋은 교육을 받겠다고 해외로 나간 유학생이 2011년 현재 29만여 명에 이른다. 이미 2, 3세로 성장한 재미동포 자녀들은 백인 주류사회에 당당히 진출해 정계 경제계 법조계 과학계 등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날이 갈수록 국내지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해외유학생은 2004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2010년 현재 5만8000명에 불과하다. 심각하게도 요즈음은 외무고시에 합격한 새내기 외교관들과 종합상사에 취직한 신입회사원들조차 국내근무를 선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창조경제'가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잘 모르긴 해도 창조경제란 지금까지 주효했던 수입형 '일본경제 발전모델'에서 벗어나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순수 한국형 경제모델'을 찾아내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쳐다볼 줄 아는 능력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이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사고, 첨단 지식, 그리고 전 지구적 네트워크가 창조경제를 만들어내는 필수요인이다. 개방성과 포용성이 결여된 '우리끼리의 지식, 논리, 정서'로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기상천외'한 인재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그러니 국내 인재들과 머리를 맞대게 해서 스파크만 일으키게 하면 된다.
재미교포인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전 장관 후보는 결국 '우리끼리 정서'에 밀려 낙마했다. 이런 폐쇄적인 환경에서 '창조경제'는 구상단계부터 더뎌질 수밖에 없다. 우리네 네트워크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 창조적 아이디어의 진입을 '우리끼리 정서'라는 높은 벽으로 막아놓고 '우리끼리' 낭비적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의 '해외 한민족네트워크'라는 크나큰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도 그렇게 썩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동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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