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영화 '애마부인'이 개봉되던 날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 이후 12편까지 후속작이 이어지면서 안소영, 오수비, 김부선 등 애마부인들이 속속 탄생했다. 애마부인은 8년 전인 1974년 프랑스 영화 '엠마뉴엘'의 한국판. 영화 제목부터 원작을 연상시키려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애마부인은 포스터에 말을 탄 여인이 등장한다. 누가 봐도 당연히 애마(愛馬)부인. 하지만 공식 표기는 애마(愛麻)부인이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 한 편의 코미디다. 그러니 훨씬 앞서 제작된 영화 엠마뉴엘이 국내에서 정식 상영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이런저런 경로로 몰래몰래 들여온 테이프를 통해 실비아 크리스텔이 알려지면서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도 뭇남성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마릴린 먼로가 거의 모든 연령대 남성의 섹시 심볼이었다면 실비아 크리스텔은 19금 전용 섹시 아이콘.

그러나 스크린 밖 그녀의 삶은 불우했다.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그녀의 자서전 'NUE(누드)'에 의하면 불과 9세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여관의 나이 많은 손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또 14세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떠나면서 부모가 이혼한다. 그녀가 11세 때 이미 필터 없는 독한 담배를 피워대고, 이후 술과 코카인에 빠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60세라는 젊은 나이에 후두암으로 숨진 것도 골초 습벽이 가져온 유산. 또 아버지뻘 남성에 집착하는 유별난 성적 취향도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그녀의 첫 남편도 29세 연상의 벨기에 작가였다.

흔히들 섹시스타는 머리가 나쁘다지만 그녀는 예외.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까지 구사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차례 월반한 것을 보면 지능지수 164라는 이야기가 소문만은 아닌 듯. 영화 '엠마뉴엘'은 19세의 엠마뉴엘이 10년 이상 연상인 외교관 남편을 만나러 태국 방콕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교롭다. 그녀의 영화 밖 삶이 영화 속 삶과 오버랩된다. 숱한 청춘들을 성에 눈뜨게 하고, 가슴 설레게 했던 엠마의 때 이른 퇴장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