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As Good As It Gets!)'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태극 젊은이들의 런던올림픽 낭보가 없었더라면 이 폭염과 보름 이상 지속된 열대야를, 정치권의 아웅다웅 트집 잡기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 파문이 준 불쾌감을 어이 견뎌내었을까 싶다. 평생의 훈련을 망쳐버린 실격 판정과 번복의 충격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한 박태환 선수에게서 우리 젊은이들의 포기하지 않는 뒷심을 볼 수 있어 정말 고마웠다. 아파트를 선물하겠다는 기업의 제안을 듣고 "시내 아파트는 농사짓는 곳이랑 멀어서….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물어보아야겠어요"라며 부모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면서도 "주신다니 고맙게 받겠습니다"라던 양학선 선수의 순진한 모습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체조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효심으로 지탱해온 아름다운 청년을 보게 되어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축구 동메달은 물론 유럽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펜싱, 사격, 리듬체조 등에서 거둔 수확은 단순히 선수들의 영광과 스포츠계의 경사로 그치지 않는다. 서양에서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씨앗은 동네 조그만 스포츠클럽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럽 산골 마을의 펜싱 클럽과 리듬 체조 클럽에 다니는 소년, 소녀들도 한국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기에 매혹되어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친밀감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흘러가지 않은 1초 때문에 눈물 흘리며 경기장에 주저앉았던 신아람 선수가 단체전에서 당당하게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는 세계 각국의 펜싱 클럽 아이들이 함께 기뻐하였을 것이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승리한 중국의 쑨양 선수가 박태환이 자기의 롤 모델(role model)이었음을 고백하고 박태환도 쑨양 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할 때에는 한국팬과 중국팬들의 기쁨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었다. 아시아인 모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치열한 각축을 벌였지만 경쟁상대를 이해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고 이 어린 선수들이 한 단계 높은 정신세계를 구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전율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박태환과 쑨양의 아름다운 경쟁은 스포츠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 그 자체였다.
아울러 펜싱, 사격, 체조, 양궁 등 비인기 종목을 꾸준하게 지원해온 SK, 한화, POSCO, 현대차, 올림픽 공식 스폰서 삼성전자 등 기업들은 물론 핸드볼과 하키 등 실업팀을 유지해준 지방자치단체들의 후원을 국민은 기억할 것이다. 지속적인 성원을 부탁하며 청소년 스포츠 클럽 등에 지원을 확대해줄 것을 희망한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국의 13개 금메달과 북한의 4개 금메달이 아직은 합쳐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노력이 급선무다. 8만여 관중이 열광하는 메인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육상과 시민이 좋아하는 사이클, 조정, 다이빙 등에서 우리는 너무도 초라하였다. 육상은 스피드, 지구력, 경기운영능력 등이 종합적으로 발휘되면서도 짧은 순간에 승부를 가르는 묘미가 있고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그 성과는 오랜 기간에 걸친 훈련과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남자 경보 50km에서 박칠성 선수는 한국신기록을 세우고 세계 13위에 올라 희망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일본은 400m 계주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교과부, 문화관광부 등은 육상 경기력 강화 장기 플랜을 세우고 실천해나가야 한다.
21세기는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으로 국가경쟁력을 좌우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오히려 문화의 힘, 스포츠가 주는 감성적 친밀감 등 '소프트 파워'가 더 중요하다. 기술력과 사용자 편리성을 강조하고 디자인까지 확 바꾼 한국산 스마트폰에 전 세계가 매료되고 있고, 케이팝(K-pop)을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즐기고 있다. 런던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빛나는 모습들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업그레이드해줄 것이다. 열대야 속에 힘껏 응원한 우리 국민도 올림픽에 참가한 바와 다름없다. 피와 땀과 정성이 결실을 맺는다는 단순명쾌한 진리와 경쟁 상대에 대한 인정과 배려를 함께 공감한 런던올림픽은 광복 67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에게 환희의 축제였다.
인제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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