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추진 논란으로 체결이 유보된 '한일정보보호협정'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 여론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이 대통령은 처리 절차가 잘못 됐다며 정부 관련 부처를 질타했지만 협정 자체는 국익에 도움이 되므로 재차 체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생각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걱정이다. 또 국무회의에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과정을 대통령은 몰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안은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즉석 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이 처리 과정을 몰랐을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이번 협정이 이미 지난 4월23일 도쿄에서 처음 가서명됐고 문구 수정을 거쳐 5월1일 다시 가서명 과정을 밟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두 달 이상 국민에게는 일언반구도 알리지 않았다. 정부가 처음부터 숨길 의도를 가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중대한 협정을 대통령 모르게 가서명하고 멋대로 국무회의에 상정했다면 그 자체가 국기 문란이 아닌가. 대통령이 알았는데도 청와대가 거짓 해명을 했다면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문제가 터지면 자신은 제 3자인양 아랫사람만 질책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 방식을 두고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꼬집는 여론을 대통령 자신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국민은 이번 협정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체결 상대국 모두에 부정적인데도 국익에 도움된다며 재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은 더 걱정스럽다.

정부는 협정 추진 경위를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는 정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더불어 대통령과 정부는 이번 협정의 재추진을 고집할 게 아니라 완전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국민도, 정치권도 찬성하지 않는 협정을 임기가 다 돼 가는 정권이 왜 굳이 체결하겠다고 나서는지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