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흥의 문화, 공명의 유전자 /박희봉

월드컵의 선물 승리 그 이상의 것

열정의 불꽃 지필 지도자 어디 없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감격적인 밤이었다. 광장과 운동장, 거리 곳곳은 거대한 함성의 웅덩이였다. 식당에서, 호프집에서 그리고 가정, 가정마다 모든 국민이 월드컵에 달뜬 밤이었다. 그리스와의 경기 초반 골이 터지자 함성은 뇌성으로 변했다. 다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춤을 추며 하나가 됐다. 300곳에 가까운 거리응원으로 2002년이 되살아날 기세다. 어디, 반도의 남쪽뿐이겠는가. 미국과 브라질,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인들의 함성은 울려퍼졌다.

도대체 월드컵이 뭐기에 한민족은 이리도 열광하는가. 공 하나가 온 나라와 세계 곳곳에 흩어진 동포들을 한데 묶고 있으니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다. 첫 승을 거둔 그 밤, 우리는 또다시 뜨거운 피를 실감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 응원 문화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을 집단최면에 빠지게 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일제는 식민지 시절 '한의 문화'를 주입했지만 지금 보면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다. 유달리 외침이 잦았고 시조나 가사, 판소리 등에서 애절한 곡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나, 이건 물 위로 드러난 얼음을 전부라고 우기는 것처럼 어리석다. 물 속에 잠긴 거대한 얼음덩이는 흥의 문화, 곧 열정이다. 마당놀이, 탈춤, 판소리 등 우리 민속의 정수는 애수가 아니라 풍자와 해학에 있다. 간난을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은 풍류를 잃지 않았다.

양반을 조롱거리로 삼는 것은 늘 열린 공간에서였다. 닫힌 공간에서 이뤄지는 서양의 악극이나 일본의 가부키 등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는 유달리 흥(興)이 많은 우리 민족의 유전자적 자질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당과 들, 산에서 이뤄지는 갖가지 놀음들은 상하를 파하고, 격식을 깨뜨리는 특이한 문화향유 방식이었다. 배우의 대사에 관객은 추임새로 화답하고 흥이 나면 너나 없이 걸판지게 한바탕 놀음을 하는 게 우리의 문화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공명(共鳴)의 문화'는 이런 흥의 문화를 가능케 한 요인이 아닌가 한다.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마음을 공유함으로써 동일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이는 곧 '우리'라는 공동체적 신명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공동체 문화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다. 위기 때마다 '모두를 위한 하나'가 되니 공간적인 간격마저 무색해진다. 이런 일들은 한민족의 공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간과 공간을 잇는 이런 공명의식은 현대과학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그의 저서 '사회적 지능'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단한 공명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말뿐만 아니라 조그만 동작,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도 인간은 순식간에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은 주변에 파장을 전달하며 이 파장이 공감을 형성하면 공명은 더욱 강화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한민족은 유달리 공명을 이루는 장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요즘의 행동양태를 보면 타고난 유전적 기질에 획득형질이 더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화론에서는 돌연변이만 유전된다고 규정했지만 현대과학은 당대의 획득형질이 여러 대를 거쳐 이어진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유전자는 그 모양도 중요하지만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는가가 전혀 다른 행동양태를 빚는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어떤 이는 인간의 두뇌는 평등하며 다만, 그 발현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러든 저러든 2002년의 그 전율적인 거리응원은 앞으로도 지속될 게 분명하다. 이번 월드컵이 이런 역할을 강화할 수도 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안겨준 귀중한 선물은 승리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의 근본을 확인하고 이를 드러냄으로써 자기확신을 강화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남는다. 흥의 문화, 공명의 문화가 유독 월드컵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는 왜 열정적이고 강력한 이런 정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스포츠에서 가능한 것이 다른 분야에서는 불가능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누가 한국인의 유전자 스위치를 켜느냐만 남게 된다. 스위치를 올릴 지도자가 어디 없는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RSS

  1. 1심상찮은 PK 민심에…문재인 대통령 급히 일정바꿔 부산행
  2. 2부산~싱가포르 ‘알짜 노선’ 배분 앞두고 항공사 초긴장
  3. 3조봉권의 문화현장 <47> 왜 환대의 도시인가?
  4. 4[사설]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 운영 해법 빨리 찾아야
  5. 5LPGA 회장 “부산을 아시아 최고 골프도시로”
  6. 6부산 중구 중앙동 주민자치위원회, 윷놀이한마당 행사 개최
  7. 7과거로 역주행…한국당 전대 그들만의 리그 되나
  8. 8“전 정부 결정 변경 가능…부산 최적 입지에 공항 세워야”
  9. 9제2의 도시 위상…관문공항에 달렸다 <5> 따로노는 인프라
  10. 10무역협회, 일본 이마바리 조선전시회 참가 지원
  1. 1김준교 누구? 카이스트 졸업 후 대치동서 수학 강사 활동, 2008년 국회의원 출마 후 3위 낙선
  2. 2‘짝’ 모태솔로 남자 3호 김준교 “저딴 게 무슨 대통령” 막말… 각계 비판 여론 직면
  3. 3‘모태솔로 남자 3호’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도전… “이딴 게 무슨 대통령”
  4. 4부산 중구, 영주2동 장학회 장학증서 수여식 개최
  5. 5심상찮은 PK 민심에…문재인 대통령 급히 일정바꿔 부산행
  6. 6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백산기념관 3·1절『한 시대 다른 삶』특별전 개최
  7. 7“전 정부 결정 변경 가능…부산 최적 입지에 공항 세워야”
  8. 8과거로 역주행…한국당 전대 그들만의 리그 되나
  9. 9민주 “김경수-드루킹 공모 증거 없다”
  10. 10청와대 과기보좌관에 이공주, 새만금개발청장 김현숙
  1. 1부산~싱가포르 ‘알짜 노선’ 배분 앞두고 항공사 초긴장
  2. 2 따로노는 인프라
  3. 3부산, 상용근로자 월급 322만 원…전국서 가장 많이 올라도 바닥권
  4. 4부산시, 지역 신발 브랜드 제품 개발 돕는다
  5. 5무역협회, 일본 이마바리 조선전시회 참가 지원
  6. 6“해외도시와 경쟁 위해 가덕도에 관문공항 만들어야”
  7. 7금융·증시 동향
  8. 8부산 패션브랜드·장인들 뭉쳐 ‘수제화 스니커즈’ 만든다
  9. 9라면에도, 예금상품에도 ‘3·1절 100주년’ 열풍
  10. 10주가지수- 2019년 2월 19일
  1. 1레이싱걸 류지혜 과거 낙태 고백에 프로게이머 이영호 해명 ‘소동’
  2. 2이다지 성희롱 외모 품평 고소하나? "PDF, 웹페이지 박제 OK"
  3. 3오늘 정월대보름, 전국에 눈·비… 지역별 달 뜨는 시간은? “달 볼 수 있을까?”
  4. 4이영호, 류지혜와 교제시절 발언 “예쁜 여자와 결혼이 꿈”
  5. 5정월대보름 현재 전국 날씨, 인천 수원 천안 청주 등 눈 펑펑 날씨 예보
  6. 6낙태 고백 류지혜, 춤추다가 극단적 선택 암시하기도… 네티즌들 “대책 필요”
  7. 7손승원 ‘보석 기각’… “술 의지 않겠다” 간청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
  8. 8류지혜, SNS에 “난 여자니까”… 하지만 낙태 당시 이영호는 미성년자
  9. 9흉가체험 중 요양병원에서 시체 발견한 BJ… “타살 흔적 발견 못해”
  10. 10‘흉가 체험’ 유튜버 진짜 시신 발견…’60대 노숙인’
  1. 1‘아자르가 또 다시?’ 첼시, 맨유 상대로 잉글랜드 FA컵 영광 지킬까(예상 라인업)
  2. 2맨유-첼시, 선발 라인업 ’루카쿠vs아자르’
  3. 3바이에른 뮌헨 정우영, 리버풀전 출전 가능성은?(챔피언스리그)
  4. 4'헤더 2골' 맨유, 첼시 상대로 2-0 리드(전반종료)
  5. 5박성현, '시즌 5승' 향해 출발…태국서 시즌 첫 출전
  6. 6프로농구 용병 최단신은 KCC 마커스 킨 171.9cm
  7. 7맨유 에레라 포그바 골로 첼시 2대0 꺾어
  8. 8프로야구 롯데, 부산지역 4개 중학교에 피칭머신 기증
  9. 9남자농구 대표팀, 농구 월드컵 예선 레바논 원정 출국
  10. 10호주여자오픈 준우승 고진영, 개인 최고 세계랭킹 8위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북항은 진정한 부산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기고 [전체보기]
보행도시, 생태적 지혜와 철학 위에서 구현을 /류경희
미래 수산식품산업을 생각하며 /남택정
기자수첩 [전체보기]
‘교양’을 갖춘 사회를 바란다 /신심범
깨지지 않은 ‘서부산 징크스’ /임동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반려동물’ 수난 시대
‘스마트’하게 살지 않을 권리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국악 선입견과 마주하기
제례악에 내포된 음양오행 사상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中企를 위한 금융은 없다? /정유선
김복동을 잊지 말자 /이병욱
도청도설 [전체보기]
광복동 창선파출소
면도기 전자파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자기 표현의 기술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읽으며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포르투갈 리스본의 에그타르트
진화하는 통영 꿀빵
사설 [전체보기]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 운영 해법 빨리 찾아야
‘5·18 망언’ 의원 징계안 상정도 못 한 국회 윤리특위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생계급여 수급 노인과 ‘줬다 뺏는 기초연금’
출산 절벽시대 ‘인구 장관’ 필요하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기절을 부르는 비너스
미술관을 지키는 강아지
이홍 칼럼 [전체보기]
개념도 정리 안 된 ‘4차 산업혁명’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되살아나는 박근혜의 그림자
보행친화도시로 가는 길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발랄라이카와 닥터 지바고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전쟁
포도의 변신은 무죄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 복간30주년기념음악회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 유콘서트
경남교육청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해맑은 상상 밀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