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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불광불급(不狂不及) /정찬주

갈 때 모르는 인생, 하는 일에 미친다면 선녀의 춤사위처럼 아름답지 않을까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9-11 20:26:4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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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제비가 너무 일찍 날아가 버리고 없다. 철새 중에서도 제비는 삼월 삼짇날 왔다가 구월 중양절에 간다고 하는데 어느새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달력을 보니 올해 중양절은 양력으로 10월 26일이다. 그러니까 내 산방에 살던 제비는 여느 해보다 두 달 정도 빠르게 날아간 셈이다.

내 산방에 살던 제비가 자꾸만 생각나 산책길에 절골 마을의 황 씨 집에 가보니 거기도 제비집이 비어 있다. 찬 서리가 내리려면 아직 멀었는데 제비들이 왜 빨리 날아가 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산방 문을 너무 매몰차게 닫아 그랬는가 싶기도 하고, 온난화의 영향이 아닐까도 싶어 황 씨에게 물어보았지만 선문답처럼 대답하며 웃는다. "스님과 제비는 올 때는 알아도 갈 때는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소짓게 하는 대답이다. 아래 절에 스님들도 어느 날 와서 공부하다 때가 되면 구름처럼 물처럼 가버리고 없다. 그래서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갈 때를 모르는 것은 스님과 제비뿐이 아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금생의 삶을 '소풍'이라고 했다.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갈 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볼 때마다 마치 자기 갈 때를 아는 것처럼 오래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 웃음이 나온다. "나는유, 오래 살아야 해유. 도자기 굽는 사람은 오래 살아야 알아줘유. 삼십 년 했는디유 한 오십 년은 해야 도자기했다고 말할 수 있지유." 산방 옆에 도자기 가마를 하나 짓고 있는데, 책임을 맡고 있는 경주 괴산도요 임병철 거사의 말이다. 경주에서 7세 때부터 옹기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나이가 지긋하신 또 한 분도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임 대장, 보약 한 제 지어주그래이. 몸이 건강해야 앞으로도 임 대장 따라다니며 가마를 박을 수 있대이."

보성에서 도자기를 굽는 다헌도예 박익주 씨는 아직 40대 초반이어서 그런지 묵묵히 일만 거든다. 대학의 도예과에서 도자기를 전공한 그는 스스로 장작가마를 짓고 싶어 허드렛일을 마다치않고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일년에 전통 장작가마를 몇 개나 만드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흔든다. 예전에는 많이 만들었지만 가스가마가 보급된 뒤로는 몇 년에 한 개씩이라고 한다. 실제 내가 사는 전라도에서는 장작가마 만드는 사람이 전무한 형편이다. 그래서 철화백자의 거장 황규동 선생의 수제자 임병철 거사를 경주까지 수소문해서 찾았던 것이다.

그와 함께 온 옹기점 출신의 거사도 전통가마 만드는 기술이 탁월한 것 같다. 장작이 들어가 가마 안의 온도를 1000도까지 예열하는 봉통을 이틀 만에 완성해버린다. 거북이 머리처럼 타원형으로 생겼기 때문에 고난도의 작업인데도 손이 아주 능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흙을 말려가면서 작업해야 하므로 '게으른 사람이 봉통을 잘 만든다'고 한다.

산청에서 7t의 황토를 실어왔지만 조금 부족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산중의 황토가 어떨지 모르겠다. 산방 위채 흙집을 지으면서 밭에 남겨놓은 것이 있어 다행이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점력이 큰 황토는 마른 뒤 균열이 가므로 볏짚이나 모래를 섞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도예를 전공한 아내가 도자기를 만들지만 나중에 나도 뛰어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임병철 씨는 그런 직감이 들었는지 종일 지켜보고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도 할 것 같은디유' 하고 슬쩍 떠본다. 글을 쓰는 데 정년이 없다고 하지만 힘이 떨어지고 상상력이 고갈되면 절필하고 소일거리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도자기 붓통이나 연적 같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임병철 거사는 가마에 불을 땔 때 가장 보기 좋은 것은 봉통 안에서 선녀처럼 하얗게 너울거리는 불길이라고 말한다. 온도가 1000도 이상 올라가면 불길이 칸의 불구멍으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봉통 안을 돌면서 나가는 형상이 마치 선녀춤 같다는 것이다. 도공들이야말로 불길에 미친 사람들 같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했다. 미치지 않으면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갈 때를 모르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친다는 것은 불길의 선녀춤처럼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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