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쿠니다케(1700m)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전경. 바로 앞엔 일본 최대 산정호수인 오오나미이케(1411m)가, 왼쪽엔 최근 폭발한 신모에다케(1421m)와 일본 천손강림신화 배경인 다카치호미네(1574m)가 잇따라 보인다. 저 멀리 내해 한 가운데 솟은 산이 화산 사쿠라지마다.

일본 규슈. 부산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서울보다 가까운 곳. 그러나 대부분 후쿠오카로 대변되는북규슈 지방을 알 뿐. 가고시마를 비롯한 남규슈는 여전히 낯설다. 일본 자연의 순수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고시마로 떠나보자.

- 화산폭발이 빚은 산세 이국적 풍광
- 저지대 소나무 길, 고지대 돌길
- 日서 가장 높고 큰 화구 호수 등
- 4시간이면 다양한 산정호수 둘러봐

- 최고봉 1700m 가라쿠니다케는
- 옛 가야 한국인 전설 깃들어
- 올레 자매길 걷고 유황온천 즐겨

■꼬리에 꼬리를 문 화산

규슈지역 가장 남쪽 가고시마 현은 절경의 산과 바다를 동시에 품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북동쪽에 자리 잡은 기리시마 시에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화산 폭발이 빚어놓은 산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장관을 이룬다. 기리시마연산으로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700m 가라쿠니다케(韓國岳·한국악)다. 이를 둘러싸고 일본 최대이자 최고(最高) 화구 호수인 오오나미이케(大浪池·1411m)와 2011년 화산 폭발로 위엄을 떨친 신모에다케(新燃岳·1421m), 일본 천손강림신화 배경인 다카치호미네(高千穗峰·1574m)가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개를 뚫고 솟은 산봉우리들이 섬 같다고 해서 기리시마(霧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더니 직접 눈으로 보면 과연 이름값이 아깝지 않다.

이곳의 매력은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광이다. 가라쿠니다케 등반 시작 지점인 에비노 고원(1200m)에서부터 가라쿠니다케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반 코스의 3분의 1 지점까지는 붉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차오르는 중간 지점을 넘어서면 그야말로 '돌길'이 시작된다. 정상에 다가설수록 초목류는 찾아보기 어렵고 검거나 붉은 돌이 산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봄철엔 산 능선을 따라 산철쭉이 만발하는데, 가라쿠니다케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해발 1700m의 가라쿠니다케 정상 표지판.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조망일 터. 최고봉인 가라쿠니다케에 서면 다른 봉우리가 발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검푸른 물이 출렁이는 오오나미이케도, 수년 전 화산 폭발로 가까이 갈 수 없는 신모에다케도 손에 잡힐 듯하다. 육지로 눈을 돌리면 에비노 시와 미야자키 현 전경이,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활화산인 사쿠라지마가 반긴다. 날이 맑다면 가고시마 현 내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가라쿠니다케를 비롯해 산 정상에서 정상으로 종주할 수 있었지만 2011년 기리시마연산 한가운데 있는 신모에다케 폭발로 인근 반경 2㎞ 이내 접근이 불가능해지면서 지금은 봉우리별로 따로 올라야 한다. 해발 고도는 높지만 이 지역 자체 고도가 높고, 에비노고원까지는 차로 이동할 수 있어 등반이 어렵진 않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쉬엄쉬엄 간다면 에비노 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 정상까지 1시간30분이면 된다. 이곳에서 오오나미이케 정상 둘레까지 돈다 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오오나미이케 이외에도 롯칸논미이케 등 크고 작은 산정호수를 구경하는 것도 가라쿠니다케 등반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 화산임을 증명하듯 길가 돌무더기 사이에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한국악의 기원

	하늘에서 본 기리시마연산. 기리시마시 제공

이 지역이 한국인에게 특히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가장 높은 봉우리에 '한국'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韓國)'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캉고쿠'로 읽히지만, 이곳은 유독 '가라쿠니'로 읽힌다. 특히 일본 천손의 기원인 니니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다카치호미네보다 해발 고도가 더 높은 최고 봉우리에 한국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다.

가고시마 트레킹 공식 웹사이트에는 '한반도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였을 정도로 높은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규슈가 한국과 가깝다고 해도 북규슈에서 신칸센을 타고도 1시간을 넘게 내려와야 하는 남규슈 지역에서 한반도가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옛사람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며 올랐던 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좀 더 깊숙이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찾은 이도 있다. 재야사학자 고(故) 이종기 선생은 저서 '가야 공주 일본에 가다'를 통해 이 시기 규슈 지방을 아우르는 야마타이 국을 다스린, 일본 건국 시초가 된 여왕 히미코가 사실은 국내에서 흔적이 사라진 가야 김수로왕의 딸 중 한 명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즉, 이 일대를 지배한 이가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이라 최고봉에 가야, 가락국을 의미하는 '가라쿠니'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후대에서 정확한 기원을 알긴 어렵지만 어찌 됐건 일본 땅에서 한국 이름이 붙은 산을 오르는 것은 등산과는 별개로 색다른 느낌을 안긴다.

■기리시마에서 만난 올레길

	규슈 올레길 중 하나인 기리시마 묘켄 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이누카이 폭포.

일본 규슈에 가면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올레길을 만날 수 있다. 제주도 올레길의 자매판이라 할 수 있는데, 2011년 제주 올레길의 성공을 지켜본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이 시스템을 그대로 빌려 규슈운수국과 함께 곳곳에 걷기 코스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기리시마 시에 있는 '기리시마 묘켄 코스'다.

일본 근대화의 기반을 다져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 인물 중 한 명인 사카모토 료마를 모티브로 해 조성된 이 코스에 들어서면 일본의 평범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거리는 약 11㎞로, 일부 가파른 계단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특히 쭉쭉 뻗은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산책이 제대로 된 힐링을 안겨준다. 코스 중간엔 가고시마 현민이 21세기에 가장 남기고 싶은 경관지 1위(1999년)로 꼽은 이누카이 폭포와 올곧은 성품으로 유명한 관료 와케 기요마루를 모신 와케신사 등이 산길이 주는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이 코스의 일부 구간은 사카모토 료마가 부인과 함께 실제로 산책했다는 산책로가 포함되어 있어 길 곳곳에 그의 흔적이 묻어있다. 코스 마지막 료마 공원에는 료마 역사관과 함께 온천탕이 있어 피로를 풀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온천

	기리시마 온천마을의 한 노천온천탕.

일본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온천이다. 특히 기리시마 온천은 '날 것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묘미다. 에비노 고원 아래 조성된 기리시마 온천마을에 들어서면 소위 계란 썩는 냄새로 불리는 짙은 유황 냄새가 방문객을 먼저 맞는다. 온천 마을로 굽어 돌아들어 가는 길가에선 연신 연기가 피어올라 온천 마을임을 실감케 한다. 이곳에는 소규모 숙박시설부터 5성급 호텔까지 다양한 형태의 숙박업소가 있다. 일부 호텔에선 계곡 옆 온천 수맥 주변을 막아 계곡 온천을 조성해 놓기도 해 시원한 계류 소리를 들으며 뜨끈한 온천을 즐기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이 지역은 해발 고도가 높아 노천탕에 앉아 있노라면 깊은 산 속 우물에서 나 홀로 목욕을 즐기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또 '기리시마 묘켄' 올레길 처음과 끝 지점 모두 온천이 자리 잡고 있어 걷기에 지친 몸을 달래기엔 그저 그만이다. 이곳은 기리시마 온천마을의 유황온천과는 달리 철분 성분이 포함된 탄산온천이라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 부산서 직항 없어 배 타고 버스로 이동, 트레킹 상품 나와

- 비행기는 후쿠오카행 이용
- 신칸센 열차로 또 갈아 타야

	기리시마 묘켄 코스 중 삼나무 숲길.

부산에서 남규슈로 가려면 우선 북규슈로 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는 가고시마 공항 직항 노선이 일주일에 세 번 있지만, 김해공항에선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올해 1월까지 대한항공이 한시적으로 전세기를 띄우긴 했으나 아직 정기노선 소식은 없다.

우선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 공항행을 타야 한다. 그리고 신칸센을 이용해 가고시마역까지 1시간20분가량 이동한 후 가라쿠니다케가 있는 기리시마 시로 다시 한 번 차를 갈아타면 된다. 가고시마역에서 기리시마까지는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만약 배를 이용할 경우 밤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경우(카멜리아)와 고속정(코비) 등을 이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카멜리아를 이용하면 전날 저녁 배를 타 다음 날 아침 하카타 항에 도착할 수 있다.

현재 부산에서 기리시마로 가 가라쿠니다케 등을 등반하는 여행상품이 시판 중인데, 이 경우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하카타 항에서 전세버스를 이용해 기리시마까지 편히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