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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곤의 '요기 좋아'<2>올봄 꽃구경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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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이다. 봄꽃이 완연히 피기 전에 단비가 내려서. 거기다 올해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꽃샘추위마저 이번 주말이면 자취를 감춘다.

봄의 전령은 뭐니 뭐니 해도 꽃이다. 모진 혹한을 이겨낸 후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봄꽃이야말로 냉잇국처럼 상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 땅 봄꽃의 개화시기는 대략 이렇다.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배꽃 복사꽃 유채꽃 사과꽃 진달래 철쭉 순. 오래전엔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엘리뇨 탓인지 일부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한 예로 10여 년 만 하더라도 섬진강변에는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빛을 잃으면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내밀었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있다. 상춘객의 입장에선 한걸음에 매화와 산수유의 꽃잔치를 볼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성부의 시 ‘봄’에서의 표현대로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고 있는 봄’을 이번 주말 마중 나가보자. 단 코로나로 인해 꽃축제는 전국 아무데도 없다.

광양 청매실농원 매화.
●남도의 봄은 섬진강에서 출발

봄의 여신이 맨 먼저 발을 디디는 곳은 섬진강변. 이곳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봄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해서, 이달부터 4월 초까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는 국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다.

섬진강변에 봄을 제일 먼저 밝히는 전령은 매화. 매화 꽃잔치의 절정은 청매실농원이다. 행정구역 상으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고로쇠 약수로 유명한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섬진마을이지만 주민 대부분이 매실농사를 짓고 있어 매화마을로 불린다. 경상도 할매 홍쌍리 회장이 있는 이곳은 섬진강변 매화의 원조. 6만여 평의 산자락이 온통 백매·홍매·청매로 넘쳐난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흩날리는 오편화 꽃잎에 꽃멀리가 날 정도다.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장관이며 매실액이 익어가는 2000여 개의 장독대도 볼꺼리다.

부산 근교에도 매화단지가 있다. 토종 청매실 단지로 유명한 양산 원동면 일대에는 지금 매화가 한창이다. 인근 원동역 주변에도 매향이 진동한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경부선 열차 그리고 꽃비가 휘날리는 매화를 한 화면에 잡으면 한 폭의 그림이다.

수백 년 된 토종 매화를 즐기려면 방문 시기를 약간 늦춰야 한다. 옛 선비들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은은히 풍기던 매향을 좇아 탐매(探梅)하던 토종 매화는 대개 산속 절집 외딴 곳에 숨어 있어 개량종보다 보름 정도 늦게 핀다. 시기는 이달 말에서 4월 초쯤. 선암사 선암매, 화엄사 흑매,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와 덕산서원 산천재 남명매, 약간 위로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홍매인 선암매는 거구에 기품까지 갖춰 으뜸으로 친다.

구례 산수유마을.
산수유 꽃물결를 만끽하려면 지리산 만복대 기슭의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을 찾아야 한다. 지리산온천단지 위쪽이다. 상위마을을 포함한 산동면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과 돌담가 등 마을 전체가 노란 파스텔톤의 옷을 입고 있어 전국 사진동호인들의 출사지로 알려져 있다.

하동 화개십리벚꽃길.
●벚꽃 터널, 전국에 꽃비를 내리다

섬진강변 매화가 생명을 다하면 19번 국도와 쌍계사 가는 길엔 벚꽃터널이 시나브로 기다린다. 올해 벚꽃은 평년보다 3일에서 5일가량 빨리 개화한다. 대략 3월 20일부터다.

섬진강을 끼고 내달리는 19번 국도는 눈부시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십오리길은 황홀하다. 오죽했으면 이 길이 청춘남녀들이 혼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해 ‘혼인길’로 불리게 됐을까. 벚꽃은 매화·산수유와 달리 4, 5일이면 꽃잎이 흩날려 시기를 특히 잘 맞춰야 한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기 시작하면 19번 국도변 만지배밭에는 순백의 배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4월 10일 전후면 절정이다. 화려한 벚꽃과 달리 배꽃은 깨끗하고 차분해 시골처녀를 꼭 닮았다.

섬진강변과 비슷한 시기 부산 인근에도 벚꽃 천지가 펼쳐진다. 진해 경화역과 여좌천, 밀양 삼랑진 양수발전소 상하부댐인 천태호와 안태호의 드라이브길에도 벚꽃터널이 만들어진다. 삼랑진은 대한민국 딸기 시배지로, 비록 끝물이지만 딸기를 맛볼 수 있다. 경주 보문단지, 합천호반, 사천 선진리성, 그리고 티벳박물관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 대원사 입구 벚꽃터널도 절정에 이른다.

‘춘마곡·추갑사’란 옛말처럼 벚꽃이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와 부안 내소사, 해인사 홍류동계곡, 대구 팔공산에 이어 진안 마이산과 청풍호반 벚꽃도 위도 순서대로 만개한다.

창녕 낙동강변 유채밭.
영덕 복사꽃.
함양 백전면 하고초꽃.
●복사꽃 사과꽃 하고초꽃도 있다

4월로 접어들면 유채꽃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 유채꽃밭이 대표적. 66만㎡로 전국 최대 규모.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인다. 봄바람에 가냘픈 몸이 흔들리는 샛노란 유채꽃을 보고 있으면 꽃멀미가 일 정도로 현란하다. 장관이다. 중부내륙(옛 구마)고속도로 남지IC에서 차로 5분 거리.

양산시 양산천 둔치에서도 유채꽃밭이 샛노랑으로 물든다. 상북면 고려제강에서 동면 호포대교까지 16㎞ 구간이다. 면적은 30만㎡. 경주 첨성대와 안압지, 황룡사터에서도 유채꽃이 만발한다. 야간 조명에 비친 첨성대와 안압지의 유채꽃은 몽환적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진홍빛의 복사꽃 천지는 경북 영덕에서 만날 수 있다. 영덕읍에서 안동 방향 34번 국도 따라 들판과 산기슭에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그 길이만 무려 12㎞. 예부터 영덕에선 복사꽃이 필 무렵 대게가 가장 맛있다고 전해져 내려와 이 봄 영덕을 방문하면 복사꽃과 대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복사꽃이 지면 같은 장소에서 연분홍 사과꽃이 핀다. 수십만 평의 면적에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가 엇비슷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운문사, 선암사와 함께 국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영주 부석사 입구에서도 사과꽃을 볼 수 있다.

늦은 봄인 5월 말~6월 초 경남 함양 백전면 오천리 양천마을에선 보랏빛 하고초꽃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2001년 함양군의 ‘1마을 1약초’ 운동의 일환으로 하고초꿀을 위해 마을 언덕배기 천수답 다랭이논에 심은 하고초꽃 군락이 보랏빛 수채화의 장관을 이루자 사진동호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탔다.

고창 선운산 동백.
동백꽃도 빠질 수 없다. 필 때보다 처절하게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동백은 엄밀히 말하면 1월부터 꽃봉우리를 틔우는, 이름 그대로 겨울꽃. 시들며 이지러져 인생무상의 서글품마저 느끼게 하는 여느 꽃과 달리 송이째 부러진 모습이 역설적으로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의 꽃으로 불린다.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안긴 거제도 지심도(只心島)는 남해안 섬 중 동백의 최대 군락지. 100만 그루 이상 우겨져 예부터 ‘동백섬’으로 불렸다. 장승포항에서 뱃길로 15분이면 만난다. 여수 오동도와 거문도, 강진 백련사도 빼놓을 수 없는 동백 여행지이다. 특히 거문도의 등대가는 길과 보로봉~불탄봉 등산로에선 쪽빛 물결과 단아한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일품이다.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막걸리집 아낙의 육자배기가 들릴 듯한 고창 선운사의 천연기념물 동백꽃도 4월 초까지 볼 수 있다.

보성 일림산 철쭉.
●산꾼들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진달래·철쭉

고봉준령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꽃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야를 일순간 화사하게 변모시키는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우선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하동 불일폭포를 강추한다. 쌍계사 산내암자인 국사암을 들머리로 출발해 천천히 50분쯤 오르면 지리산에 몇 안 되는 너른 터인 불일평전에 닿고, 여기서 10분이면 폭포를 만난다. 가는 길은 온통 진달래 천지다. 겸재가 그려 더욱 유명해진 불일폭포 우측 절벽의 불타오르는 진홍빛 풍광은 화엄의 세계에 다름아니다. 4월 하순이면 조우할 수 있다.

거제도 대금산,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의 배경인 창원 천주산과 비음산도 진달래로 유명하다. 4월 10일 전후 만개한다. 비음산은 특히 진달래에 이어 철쭉도 연이어 만개한다. 여수 영취산, 밀양 종남산 진달래도 온 산을 불태운다. 대구 비슬산 참꽃은 1000m 고지대에 100만㎡나 되는 산사면에 펼쳐져 규모면에서 국내 최고. 산상화원이 따로 없다. 4월 하순 만개한다.

철쭉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 전국 철쭉산들의 개화시기는 대체로 장흥 제암산·보성 일림산(5월 초순), 합천 황매산·덕유산·지리산 바래봉(5월 초순~중순), 소백산·지리산 세석평전(5월 하순), 태백산(6월 초순)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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