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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 서병조
  •  |   입력 : 2021-07-12 20:00:2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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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수술 후 22년째 주치의인 필자를 정기적으로 찾는 환자. 화려한 옷차림, 구성진 목소리. 위암 환우모임에서 마이크를 잡고 요즘 인기 상승 중인 트롯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그 환자는 누가 봐도 전문 가수 빰치는 실력이다.

올해 64세의 박아무개(여) 씨. 지난 1999년 서울백병원 위암센터에서 3기 위암으로 위 전절제술을 받고, 수술 후 보조 항암요법도 받은 환자다. 부산이 거주지인 경상도 아지매 박 씨는 수술 후 정기적인 외래 방문과 검사를 위해 서울과 부산을 마다하지 않고 오가는 장거리 여정을 반복해왔다.

필자가 부산 해운대백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긴 2010년 이후 박 씨는 더 이상 서울로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지 않고 부산에서 위암 수술 후 관리를 받고 있다. 위암으로 위 전절제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위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복부 CT, 혈액 검사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수술 후 5년이 경과되면 1년에 한 번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빈혈 예방을 위해 비타민 B12 주사도 정기적으로 투여받아야 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주치의인 필자가 부산에 내려와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그녀는 아마추어 가수로 노인 요양원 등지에서 자원봉사로 노래를 맛깔스럽게 해온 지역의 아마추어 가수였다.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암 환우모임을 할 때 위 전절제술을 받은 환우 대표로 인사말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녀는 인사말뿐만 아니라 마이크를 잡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위암 수술 후 서울에서 10년, 부산에서 11년. 20여 년 외래방문을 하고 복부 CT를 찍은 어느 날, 심한 빈혈 소견을 보여 철분제 투여를 하고 필요 시 수혈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방 후 그녀에게 빈혈 교정을 위해 처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뜻밖에 돈이 없어서 못 하겠다고 하는 거였다.

사실 주치의인 필자는 그 오랜 기간 이 환자의 외형만 봐왔지 경제 상태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환자는 생활 보조를 받을 정도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 딱한 사정임에도 위 전절제술 후 빈혈 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투여받아야 하는 비타민 B12 주사를 맞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5.0 정도로 낮아 필자가 치료비를 부담할 테니 수혈을 받고 가라고 권유했다. 추후 비용은 병원 사회사업실과 연결해 부담하기로 하고 필자의 지갑에서 수혈 비용을 환자분에게 드렸다. 그 비용은 필자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저렴했다.

수혈 후 다시 외래를 방문한 그녀는 매우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이어서 안심이 됐다.

수술 후 20여 년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필자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환자분. 앞으로도 쭉 건강하게 노래 부르면서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한다.

서병조 해운대백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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