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또 퍼렇게 변하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손을 끊어내고 싶어요.”
혈관질환으로 내원한 레이노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하던 말이다. 손가락을 차가운 얼음물에 담근 채로 뺄 수 없을 때 느껴지는 고통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회복이 되면 거짓말처럼 손가락은 회복이 되고 심한 통증이 있었던 기억만이 남아있게 되어 손의 색깔 변화를 본 적 없는 가족들은 환자의 고통을 짐작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체 레이노병은 무엇일까?
레이노병이란 차가운 온도(공기, 물) 혹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해 손가락, 발가락, 코나 귀 등의 말초 조직의 혈관이 갑작스럽게 수축해 색깔이 창백하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게 양손에 흔하게 발생하며 대칭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하던 색깔은 푸르스름해지며, 저리고 아픈 느낌부터 시작해 심한 통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따뜻하게 해주면 이러한 증상이 천천히 호전된다. 레이노병이 침범하는 말초 조직은 만성적으로 방치하는 경우 궤양이 발생하기도 하며 피부의 이차적인 변성이 오게 되고, 감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속적인 저린감 등의 감각 이상 또한 발생할 수 있다.
레이노병을 일으키는 특별한 원인의 유무에 따라 일차성 레이노병과 이차성 레이노병으로 나눌 수가 있다. 다른 질병이나 원인 없이 증상이 발생한 경우를 일차성 레이노병이라고 하며, 젊은 여자 환자에게서 잘 생긴다. 양손에 대칭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며, 통증이 심하지 않고 따뜻하게 해 줄 경우 쉽게 호전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원인 질환들과 동반되어 발생하는 이차성 레이노병의 경우는 일차성보다는 나이가 많은 환자들에게서 발병하며, 일반적으로 증상의 정도가 심하여 침범한 말초조직의 허헐성 변화 및 괴사까지 유발하기도 한다. 보통 전신 홍반성 루푸스, 전신성 경화증 등의 자가면역질환, 버거씨병 등에 동반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레이노병이 의심되는 경우, 자가면역 질환에 대한 여러가지 혈액검사들을 시행한다. 증상이 뚜렷하지 않을 경우에는 차가운 물에 손 혹은 발을 담근 후 증상을 유발하여 관찰하는 한냉부하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또한 혈관 조영술을 통해 말초의 혈관의 수축, 이완 상태를 직접적으로 관찰하여 확진한다.
레이노병은 혈관이 수축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하여 추울 때는 더욱 보온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외출을 할 때는 핫 팩을 쥐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한 중요한 것은 반드시 금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카페인이 든 식품과 엑티피드 성분의 코감기약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피임약, 고혈압에 사용하는 프로프라놀롤과 같은 베타차단제도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생활 습관의 개선만으로 호전이 없고 증상이 심한 경우는 병원을 방문하여 검사를 시행하고, 적절한 약물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혈관을 이완시키는 약제를 사용하게 되고, 칼슘채널차단제, 프로스타글란딘, 니트로글리세린크림, 안지오텐신전환효소 억제제, 안지오텐신II 길항제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혈액순환 개선제 등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약물치료에도 호전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혈관의 수축을 관장하는 교감신경에 대하여 신경차단요법을 시행 할 수 있고, 좁아진 혈관에 카테터를 삽입하여 넓히는 풍선혈관 확장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 반복되는 손가락, 발가락의 통증을 쉽게 생각하지말고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배미주·부산대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