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도 명예도
- 이름도 남김없이 태운 열정
- 기형도와 김민기 조세희
- 문지·창비, 그리고 남포동 '무아'
- 소비와 풍요 속에 탄생한
- 자유와 전복의 신세대·X세대
- '서태지 현상'은 그 세대의 증거
- 참, 하루키와 '오겡끼데스까'도
- 'IMF'에 잠식당한 청춘
- 알바비로 만든 1000만 영화들
- 2002 월드컵의 그 카타르시스
- 아이돌, 복고, 인디 어떤 노래든
- '멜론' 통하면 원할 때 듣는 시대
- 포기할 게, 절망할 게 많다지만
- 그래도 청춘은 청춘
나는 오늘도 '밥벌이의 지겨움'과 무거움 속에 '저녁이 없는 삶'을 이어간다. 세대불문 실업, 불안한 노후와 생계를 비관하는 이들의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 뉴스의 주인공이 내가 될까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 서른 이후 내 삶은 언제나 그랬다. 그러나 나에게도 빛나던 청춘이 있었다. 무한할 것만 같은 백지에 장밋빛 꿈과 사랑을 그리던. 때론 최승자의 시처럼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을 헤매던. 바로 그 이십 대 시절 행복과 위안이 되어준 나의 친구를 소개한다.
※기자註 : "당신에게 청춘을 묻습니다." 20대 시절 즐겼던 대중문화(문학,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 대해 세대별로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를 종합해 독백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올해 서른 살이 되는 1987년생을 마지막 세대의 기점으로 삼고, 역순으로 세대를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각 세대의 출발점이 되는 이들이 서른 살이 되는 해를 전후해 시대를 나눴습니다. 새해 벽두, 이들의 고백 어느 한 대목에서든, 당신의 청춘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잠시 추억에 잠겨 미소 지을 수 있기를.
# 50대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고 전해라 (1957~1966년생/1977~1986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의 시 '대학시절'은 내 이야기 같았다. 거리도 자유롭지 않았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한답시고 경찰 손엔 30㎝ 자와 가위, 바리깡이 들려있었다. '금기'가 늘어날수록 '일탈'의 유혹이 커져 가는 것이 청춘이었다. 통기타를 치고 맥주를 마시며 양희은, 김민기, 송창식 노래를 따라불렀다. 부산 중구 광복동 음악다방 '무아'에서 고고바지를 차려입고 음악을 들었다. 중구 남포동에서 영화 보고 통행금지 전까지 집에 들어가는 게 그 시절 연애의 전부였다. 부산극장 동명극장 의자에 파묻혀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속)'에 빠져들었다. 중구 보수동 책방 골목은 놀이터였다. '토지'의 서희와 첫사랑에 빠져 '현대문학' 과월호를 찾아 몇달간 발품을 팔기도 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아놀드 하우저의 책들을 창비 단행본으로 접했다. 문학과 지성사도 이때 생겼다. 조세희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밤새워 읽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빌려주기만 하면 없어져 몇 권을 새로 샀는지 모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청춘은 뜨겁게 타올랐다. 돌아보면 남은 것은 재뿐일지도 모르지만.
# 40대
■X세대 인생의 동그라미(1967~1976년생/1987~1996년)
세상은 우리를 일컬어 'X세대'라 했다. '신세대' '오렌지족'이란 말도 나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 세대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를 거부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청년. 1990년대는 소비와 풍요의 시대였다. 우리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의 자장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져갔다. 방학이면 하얀 무스 한 통을 머리에 바른 채 압구정동에 간다며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는 친구, '맥가이버'의 고향 미국을 향해 배낭여행을 떠난 친구도 있었다. TV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1986년 부산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를 보기 위해 볼록한 브라운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앉았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유머1번지'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쇼·오락 프로그램이 월요일 화제의 중심이었다. '질투'의 최진실, '모래시계'의 고현정, '여명의 눈동자' 채시라. 여배우 트로이카 중 누가 더 예쁘냐를 놓고 무의미한 말싸움을 이어가기도 했다.
워크맨, 삐삐,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같은 지금은 사라진 '신문물'도 우리의 전유물이었다. '국산품을 애용하자'며 외제차도 못 타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그때까지는 우리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흐름도 분명히 존재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단체관람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를 향한 갈망을 막기는 어려웠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유행했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도 불법 복제테이프로 돌려봤으니 말이다.
# 30대
■88만 원 세대는 이렇게 어른이 된다(1977~1986년생/1997~2006년)
1997년 IMF 외환위기의 그림자는 우리의 청춘을 잠식했다. 우리에겐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학은 더는 낭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고교 졸업생 80% 이상이 대학문을 들어섰지만 굳게 닫힌 취업문 앞에 무릎 꿇는 선배들의 등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했다. 대학을 취업 전진기지로 삼아 학점과 스펙전쟁을 치러야 했다. 친구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반복했고, 누군가는 대학문을 나서는 게 두려워 졸업을 유예하며 대학시절은 길어만 갔다. '예전 같으면 아이 몇은 낳았을 나이'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부모의 품을 떠날 줄 모르는 '캥거루'가 됐다. 2003년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을 불러모은 뒤로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이 차례로 1000만 행진을 이어갔다. 남들이 다 보는데 보지 않으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아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극장에 앉았다. '무한도전'은 방송국 홈페이지를 통해 본다.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본방사수'는 물 건너간다.
SES 핑클 HOT 젝스키스 걸그룹과 아이돌이 장악한 음악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MP3에 윤도현의 노래를 담아 즐겨들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던 '오 필승 코리아'는 우리 세대의 애국가였다. 붉은 악마는 '꿈은 이루어진다' 플래카드를 들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남은 건 그저 함께했던 기억이다.
# 20대
■N포세대의 노래는 계속된다(1987~1996년생/2007~2016년)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블루투스헤드폰을 통해 귓바퀴를 타고 흐르는 것은 산울림 7집(1981)에 실린 김창완의 덤덤한 목소리가 아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에 실린 김필의 감미로운 보이스다. 만원 도시철도를 타기 전, 온전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주는 마법의 무기를 장착한다.
10대 시절 '신화' 오빠들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살을 넘어서며 멜론뮤직, 네이버뮤직에서 순위 차트나 테마별 음악 소개 채널을 통해 '파도 타듯' 이 음악 저 음악 듣다 보니 나만의 취향도 생겼다. 십센치 한희정 같은 인디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했다. 요즘엔 부산진구 양정동 '골방프로젝트'에서 'YUMI'와 '우주왕복선 싸이드미러' '여유'같은 지역 인디뮤지션 공연도 보러다닌다. 휴대전화로 음악만 듣는 것은 '당근' 아니다. 드라마, 웹툰, 기사까지 볼 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일단 내 '페북(페이스북)'에 들어가 타임라인을 쓸어내린다. 네모나게 편집된 '카드뉴스'로 세상을 읽고 '응8' 명장면·대사를 편집한 친구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다보니 교대역 도착. '삼포(취업 결혼 출산)세대' '흙수저' '노오오력'은 우리 세대의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도 포기할 게 많다고 'N포세대'란 말도 나왔단다. ㅎㅎ 지하철 출구 밖 겨울바람이 차다. 세상은 절망을 노래하지만 나는 아직도 희망을 믿는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노래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