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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의 진료실 일기 <5> 진단서 전쟁

알파벳 하나만 바꿔달라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22 19:09:15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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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환자 면담 중인데 갑자기 바깥이 시끄럽다. 나와 보니 며칠 전 퇴원한 분이랑 병원 직원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달려와 "원장님, 왜 안 됩니까. 좀 해주세요. 코드만 S로 바꾸면 된다는데…"라고 말한다. 직원이 다시 설명한다. 의료기록은 한 번 작성되면 수정할 수 없으며, 특히 상병명은 바꿀 수 없다고…. 그러나 막무가내다. "보험설계사가 된다고 하는데, 왜 안 된다고 하느냐. 나도 다친 거 맞다"

특별한 외상 없이 허리가 아파 입원한 환자인데 치료 경과가 좋아 2주 만에 퇴원했다. 병실 생활도 모범적이었던 분으로 기억하는데, 병원에서 제기하는 민원 수준은 뜻밖이었다. 도리 없이 경찰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요지는 진단서 기재 내용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 원래 허리가 아파 입원한 뒤 척추관 협착증이 의심됐고, MRI 확진 후 경막 외 신경성형술로 빨리 통증을 완화해 퇴원하게 됐다. 그래서 진단서에 기재한 것은 '척추 협착, 요추부, M4806'. M4806은 국내 '표준 질병 사인분류표'에 따라 국가가 각 질병에 붙인 일종의 기호, 즉 코드다. 이것을 바꿔 달라는 것이다. S 코드로. S 코드는 질병이 아니라 상해, 즉 다친 탓에 문제가 생길 때 붙이는 코드다. 예를 들면 골절과 같은 병명은 모두 S 코드다.

왜 그랬을까. 돈 때문이다. 요즘 국민건강보험 외에 민간 보험상품이 많다. 흔히 의료실비 또는 의료실손보험이라고 하는데, 가입자의 형편에 따라 가입 조건과 보장 내용이 다르다. 이번 사례처럼 다쳐서 입원하면 보험 약관상 본인 부담 치료비 전액을 보험회사가 책임지지만, 질병, 즉 나이가 들거나 다른 질환에 따라 2차적으로 발생할 때에는 보장을 못 받는다. 상상하건대 이런 것 같다.

가입 당시 이런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다가 막상 치료비 영수증을 들고 보험회사에 가니 당연히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 보험설계사한테 따지니, 보험설계사는 '병원에 가 진단서 코드 좀 바꿔달라고 해라. 그러면 알아듣는다. 그리고 다음에 입원할 때는 일하다가 다쳤다고 하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맞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와 의사에게 이렇게 얘기하면 의사는 고령 탓에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다쳐서 그런 것이지 구분하기가 사실 어렵다. 대부분 의사는 환자가 얘기하는 대로 다친 것이라 볼 것이다. 나름 의학적 기준이 있지만 소송이나 형사 처벌과 같은 사안이 있을 때에나 따지게 될 뿐, 보통 환자의 이야기를 믿고 진료한다. 이번 사례의 경우 다쳐서 아프다고 했다면, 육하원칙에 따라 문진했을 것이고, 환자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면 S 코드, 이른바 '상해 코드'로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록이 이미 작성돼 있다면, 더욱이 돈 문제가 뻔히 관련돼 있다면 수정할 수 없다. 갈수록 먹고 살기가 팍팍한 요즘이다. 살기가 어려운 나머지 이런 보험금을 이용해 생활비를 벌려는 사람들, 물론 불법 행위이긴 하지만 단지 그들의 문제만으로 몰아붙이기에는 뭔가 씁쓸함이 있다.

아주재활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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