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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와 시도] “약자의 목소리 기록만으론 한계…어떻게 더 많은 시민에 전할지 고민”

영화감독 박배일

  • 김태훈 기자 hiro@kookje.co.kr
  •  |   입력 : 2025-11-30 18:26:1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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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송전탑·생탁 노동자 파업
- 생생한 현장 목소리 영화 기록
- 佛서 쉬며 외연확장 필요 인지
- 지역 첫 독립다큐 영화제 개최
- “불합리한 현실 시민에 알릴 것”

“지난 20여 년은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몰두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 목소리를 어떻게 더 많은 시민에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 합니다.”
그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확산과 연대를 고민하던 끝에 올해 처음 선보인 제1회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 행사 모습이다.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 제공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기록한 ‘밀양 아리랑’(2014), 생탁 노동자 파업을 다룬 ‘깨어난 침묵’(2016),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란을 담은 ‘소성리’(2017)…. 늘 현장의 최전선에서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박배일(44) 감독이 최근 야심찬 시도를 선보였다. 지역 최초의 독립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제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이하 부다페스트)을 개최한 것이다(국제신문 지난 7일 자 14면 보도).

지난 7~9일 열린 제1회 부다페스트는 무사이극장(북구 화명동)과 사상인디스테이션(사상구 괘법동)에서 단편 3편과 장편 8편 등 총 11편의 작품을 상영하며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최근 부산 수영구 수영동의 카페 인디샷에서 박 감독을 만나 이번 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여년전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잇던 이웃 노부부와 우연히 대화를 나눈 것을 계기로 제가 알던 세상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분명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분들인데도 전혀 도움받지 못하고 계셨죠.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향한 분노가 저를 지난 20년간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지난달 19일 부산 수영구의 한 카페에서 박배일 감독이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박 감독은 2007년 이웃의 가난한 노부부의 삶을 담아낸 단편 ‘그들만의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주류 미디어가 비추지 못한 현장의 목소리를 영화로 알렸다. 그러던 중 그는 2023년 3월 갑작스레 한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누구보다 굳건히 현장을 지킨 그였기에 지역 영화계에서도 다양한 추측이 오갔을 정도로 예상 밖의 행보였다.

그를 현장에서 잠시 물러서게 만든 건 투쟁 끝에 마주한 무력감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박종필, 이강길 감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난 일도 마음속에 큰 충격으로 남았다. 박 감독은 1년 반 동안 파리에 머무르며 잠시 창작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 왔는데 계속해서 실패를 목격하다 보니 허무함이 쌓이더라고요. 쉬어가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현장을 떠나버리게 될 것 같아 한국을 잠시 떠났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결론을 내렸어요. 그동안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그 목소리가 시민에게 들리게 할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요.”

박 감독이 귀국 후 동료들과 함께 부다페스트를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지만 독립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는 독립 다큐 창작자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한편 시민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모든 작품 상영 후 감독 및 출연진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또 영화계 관계자를 초청해 독립 다큐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 짚는 강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는 내년에 더욱 외연을 넓힌다. 올해는 초청작 중심의 구성이었지만 내년부터는 공모제를 도입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상영관도 기존 두 곳에서 강서구까지 확대한다.

영화제 외에 박 감독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시민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좀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가 속한 제작사 오지필름은 2012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 ‘깨세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이 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단편 4편이 이번 부다페스트에서 특별 상영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박 감독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히 하고 있다. 현재는 가덕도를 소재로 한 신작을 작업하고 있다.

“저는 스스로를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좋고 싫어서가 아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현장과 연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알릴 겁니다. 영화제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쌓이면 언젠가 시민에게도 현장의 목소리가 닿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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