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인 이병주문학관 강당에 들어서자, 벽면을 장식한 붓글씨 작품 20편이 청중의 눈길을 받고 있었다.

나림 이병주(1921~1992) 작가의 문학작품 속에 풍성하게 나오는 한시(漢詩)를 하동의 서예가 4인이 쓴 작품이었다. 그중 한 편 옮겨 본다. 문체·전개·인물, 모든 면에서 힘이 넘치는 역사 장편소설 ‘소설 허균’ 속에서 나림이 인용한 중국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교흥(郊興)’이라고 한다.

조광수 나림연구회장이 3월 29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나림 이병주의 인생 열차를 관통하는 키워드 셋’을 강연하고 있다. 실내 벽면에 하동 서예가들이 쓴 이병주 작품 속 한시가 멋스럽게 전시돼 있다.

“雨去花光濕(우거화광습)/ 비가 그치니 꽃잎에 햇살이 스며들고/ 風歸葉影疎(풍귀엽영소)/ 바람 그치니 그림자가 지는구나/ 山人不惜醉(산인불석취)/ 산에 살면서 술에 취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唯畏綠尊虛(유외록존허)/ 오직 술잔이 비는 것을 걱정하네.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본인 고향인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 14-28에 자리한 이병주문학관에서,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봄날의 문학 콘서트-나림 이병주의 인생 열차 강연과 소설 속 명시 서예 전시’가 열리는 모습을 만약 나림 선생이 직접 봤다면 분명 저 ‘교흥’이라는 시를 택해 읊었을 듯하다.

서예 작품은 완석 정대병, 호정 김진권, 정호 최영기, 화봉 최기동 서예가가 썼다.

이병주문학관과 하동문인협회가 주최하고, 국제신문·하동군·하동신문이 후원한 문학행사 ‘봄날의 문학 콘서트-나림 이병주의 인생 열차 강연과 소설 속 명시 서예 전시’가 3월 29일 오전 10시 이병주문학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이병주문학관이 적극성을 발휘해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이병주 문학 행사를 연 점이 우선 뜻깊다. 행사장에는 지역주민이 많이 참여했다. 내빈 소개 때 북천면장, 북천면 노인회장, 진주예총·박경리문학관 관계자, 진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학자와 예술가 등 지역민이 많아 이병주문학관과 나림 이병주의 존재감을 지역 문화계에서 더욱 높이려는 주최 측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최증수 초대 이병주문학관 관장, 지리산의 시인 이원규, 부산 문단의 임성용 배길남 정재운 소설가 등도 동참했다.

하동은 이병주 작가의 고향, 진주는 그가 삶의 기틀을 다지며 배운 곳, 부산의 국제신문은 나림 이병주 선생이 언론인으로서 활약했던 직장이다.

이날 행사 때 이병주무학관 강당 객석이 가득 찼다.

이날 개회사는 이종수 이병주문학관장이 맡고, 강연은 부산에서 간 조광수 나림연구회장(전 영산대 교수·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학회장)이 하고, 축사와 강사소개를 국제신문 오상준 총괄본부장이 각각 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에 근거를 둔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 대표 이기수 김종회)도 건재하고 의욕이 높다.

그러니 이병주문학관-이병주기념사업회-국제신문-나림연구회 등으로 이어지고 부산 경남 서울을 포괄하며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문학상)·이병주문학콘서트·이병주문학관(상설전시와 특별행사)-나림연구회(나림 문학 향유와 확산)를 아우르는 활동을 기대하게 했다.

이종수 관장은 “최근 산불 탓에 나라에 큰 피해가 생기고 많은 주민이 불안해 하여 이 행사를 취소할지 진행할지 참으로 깊이 고민했다. 고심 끝에 행사 규모는 줄이고 공연 프로그램은 취소하며 마음가짐을 더욱 진지하게 가지면서 차분하게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부산 시단에서 활동하는 권명해 시인은 ‘지리산’과 나림을 위해 쓴 헌시를 낭송했다.

조광수 나림연구회 회장은 강연에서 진정한 나림 애호가이자 이병주 전문가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차분하고 흔들림 없이 ‘나림 이병주의 인생열차-나림 이병주의 인생열차를 관통하는 키워드 셋’을 들려주었다. 깊이 있고 흥미로웠다. 그가 추출한 키워듯 셋은 다음과 같다. 1. 사랑과 사랑의 거리 재기2. 돌아보기와 내다보기의 균형 3. 아나키즘.

강연 뒤 객석에서 질문이 쏟아졌고 진행을 맡은 김남호 시인·문학평론가는 이어지는 물음을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