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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체’ 만든 그 안상수 맞습니다…부산서 상업전시 데뷔

장르 파괴 타이포그라피의 대가

  •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  |   입력 : 2024-05-13 18:55:0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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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달 9일까지 해운대 OKNP서
- ‘문자도’ 시리즈 총망라한 전시

문서 작성 프로그램 ‘아래한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글꼴 ‘안상수체’가 처음 선보인 때는 1985년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지은 이 글씨체는 ‘한글은 모름지기 네모나게 써야 예쁘다’는 이른바 ‘네모틀’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타이포그래피의 대가 안상수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케이앤피 제공
윗 글자에 줄을 맞춰 써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받침의 위치는 반쯤 어긋나있고 어떤 글자는 길고 좁다랬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예뻤기에 1991년 사람 이름을 딴 서체로는 유일하게 아래한글에 탑재됐고, 이내 대표 글꼴이 됐다.

타이포그래피의 대가 날개 안상수는 평생 글자, 그중에서도 한글과 씨름했다. 이전까지 글자는 ‘읽히는 대상’ 즉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 정도로 여겨졌지만 그에게 글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대학생 때 학보사 편집장을 하며 신문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글자를 ‘물성’으로 만난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인쇄 활자는 글자가 거꾸로 된 모양인데, 이를 통해 수단으로서 글자를 넘어 글씨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디자인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를 통해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의 문자 조형 실험은 2017년께부터 ‘문자도’ 시리즈로 수렴됐다. 말 그대로 글자와 그림을 버무리는 시도다. ‘문자도’를 처음 보면 언뜻 추사 김정희와 같은 대가의 작품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서민의 그림, 즉 민화에서 출발한다.

한글 자음 ‘ㅎ’을 시작으로 한 그의 ‘문자도’는 글자인 듯 그림 같다. 작품 속 글자 ‘ㅎ’을 보는 순간 읽으려는 본능이 고개를 드는데 캔버스 전체를 보면 도저히 읽을 수는 없는, 즉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다가오면서 곧 그것이 무모한 시도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안상수의 ‘문자도’ 시리즈. 오케이앤피 제공
“글자는 의미의 그림자 같은 거잖아요. 그러니 글자 처지에서는 그 의미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싶은 거야. ‘난 해방되고 싶어’ 이게 글자의 입장인 거죠. 나를 의미로 보지 말고 글자 자체로 봐달라고 하는 것, 그 지점이 글자가 독립되는 순간이에요. ‘ㅎ’이 왜 저기 있느냐며 논리만으로 볼 게 아니라 글쎄 내 ‘ㅎ’은 그냥 그 자체로 봐달라는 거에요.”

‘문자도’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재료다. 검지만 그저 검지만은 않은 것은 흑연에 곱돌가루를 넣어서다. 그가 조합한 재료는 연필이 아닌, 그렇다고 먹도 아닌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그림을 그려나간 흔적도 평범하지 않다. 붓은 아닌데, 그렇다고 판화처럼 찍어낸 것도 아니어서 낯설고 낯선 흔적이다. 그는 “내 눈에 도구가 되겠다 하면 그냥 갖다 쓴다. 유리창 닦는 도구를 쓰기도 하고 변기 청소 솔도 훌륭하다”고 했다.

다음 달 9일까지 해운대 갤러리 오케이엔피(OKNP)에서 열리는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는 ‘문자도’를 총망라한 전시로 그의 첫 상업 전시다. 흡사 만화경을 연상케 하는 그의 연작은 그가 단순히 글자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파벳 소문자 a와 한글의 마지막 자음 ㅎ을 연결한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문자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깨달음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자신의 미학적 성취에 대해 ‘홀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안상수의 작품은 문자의 묘미에 ‘홀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최초의 아티스트 북으로 불리는 ‘보고서/보고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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