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감독 저자 담백한 여행기
- 세계 각국 매력적 사진 곁들여
- 테라스 등 주제로 다양한 기록
-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박 로드리고 세희의 여행책 ‘여행하는 낱말’ 속으로 빠져드는 동안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책에 관한 서평 기사는 되도록 짧게 써야지’. 그런 궁리를 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 책에 글과 함께 실린 좋은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신문에 싣고 싶었다.

촬영감독이자 여행가 박 로드리고 세희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찍은 사진. 어디론가 떠나려고 모여든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사연이 보인다. 곳간 제공

‘여행하는 낱말’에는 진솔하고 담백한 여행기와 여행에세이가 담겼다. 촬영감독으로 일하는 박 로드리고 세희의 산문은 진솔·담백한 데서 아름다움이 나온다. 퍽 인상 깊은 여행사진도 풍성하다. 그(이름으로는 잘 분간이 안 될 텐데, 저자는 남성이다)가 영화·영상·사진 분야 전문가인 덕분에 사진의 매력이 매우 돋보이는 책인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과 일상 사이에 놓인 경계를 지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만큼 여행을 사랑한다. 그런 그가 현장에 아주 아주 가까이 다가가 찍은 여행사진을 산문의 내용과 딱딱 맞춰 책에 실었으니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부른다. 사진만 좋은 게 아니라, 사진과 글이 어우러지고 꽉 맞물린 책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을 꼽아본다. 좋은 대목이 많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예컨대 ‘테라스’라는 소제목을 단 단원에서 박 로드리고 세희는 말한다. “테라스나 대청마루 같은 건축적 완충지대를 선호하기는 유럽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다르지 않지만, 지금 우리네 삶에는 이러한 완충지대가 지워지고 없다.” (100쪽) 그리고 사진이 나온다. 설산으로 여행 온 일행 7명이 흰 눈밭 속에 놓은 벤치에서 쉬며 이야기한다. 이런 테라스가 있었다니!

박 로드리고 세희가 로마에서 찍은 사진.

책 가장 앞쪽에 실은 사진은 이탈리아 나폴리의 역에서 찍었다. 어디론가 가려고 사람들은 앉아 기다리고, 그 뒤로 큰 광고판이 붙어 있다. 절묘하게 사람살이의 다양함과 떠남의 설렘을 전하는 사진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거대한 조각상을 찍었는데, 그 앞에 선 남자가 셀피를 찍는다. 조각상으로 표현된 신과 셀피를 찍는 인간의 모습이 닮았다. 재치 있게, 2000년 전과 지금의 공통분모를 사진은 드러냈다.

저자는 가끔 유럽에 있는 것에 견줘 우리에게 없거나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인용문도 종종 나오는데, 많지는 않다. ‘여행하는 낱말’이 지닌 깊은 사유와 여행에 뛰어드는 마음, 풍부한 체험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여정, 활력과 친절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