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의 역사적 인물 주인공으로
- 하아무 작가 단편 역사소설집 내
- 남명 조식·이극로 선생 등 등장

단편이 됐든 장편이 됐든, 좋은 역사소설을 쓰는 일은 작가가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그 사람처럼 생각하며 살아보는 것’에 달렸다는 판단이 문득 왔다. 중견 작가 하아무의 소설집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를 읽으며 받은 느낌이다.

수록 작품 8편 가운데 남명 조식 선생의 한양 여정을 담은 ‘남명매 심은 뜻은’,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의 삶 한순간을 강렬히 잡아낸 ‘꿈속의 꿈’, 고주몽과 유화 부인의 인생에서 가장 긴박하고 중요했던 순간을 그린 ‘다섯 개의 작은 주머니’에서 그런 인상을 조금 더 진하게 받았는데, 이런 소감이 작가의 창작 의도와 맞는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작품은 향유자의 것이 된다는 예술계의 오랜 격언에 기대고자 한다.

위에 언급한 단편 역사소설에서 하아무 작가가 주인공들을 가슴에 품은 채 오래 사유하고 발효하고 질문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명매 심은 뜻은’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조정에 출사해 벼슬 하라는 명을 거듭 내리는 임금에게 자기 뜻을 밝히기 위해 한양으로 간다. 한양에서 만난 옛 문우들은 권력이나 돈, 헛된 명예에 집착하며 이를 합리화하는 지식인으로 변해 있다.

남명 선생은 실질과 실천을 중시하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제자들과 토론하며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한 ‘시골 학자’다. 그는 지리산 자락 시골로 돌아간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서 세상을 바꿀 커다란 에너지가 왜 주변부·변방에서 나오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남명 조식이라는 거인의 거대한 삶을 단면으로 과감히 잘라 한 장면만 보여주면서도 매화 향기 같은 인상을 남긴다. 이는 단편소설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다가왔다.

작가가 주인공에 관해 오래 공부해야, 아니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살아봐야 이런 ‘단편’은 나올 수 있을 터인데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이극로 선생의 치열한 삶 이미지가 ‘꿈속의 꿈’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려진다.

논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최경회 장군의 아내였다고 전해진다. ‘조흔꼿 논개’에서 논개는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기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적장들의 연회에 잠입한다. 주위에서 만류한다. “하오나 마님, 그러면 후대까지 기녀로 남게 될 텐데….” 논개가 답한다. “관계없네.” 논개는 남편과 동료 장수들이 남긴 시를 읊는다. “저 강물이 흘러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혼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

삼국 시대의 기구한 사연을 담은 ‘다사성의 전설’, 일제강점기 기생으로서 지조와 애국의 마음을 지킨 산홍을 담은 ‘산홍아 산홍아’까지 포함하면, 작가 하아무가 이 단편집에서 꼿꼿한 정신, 경남의 마음, 혼탁한 중심부의 욕망과 변명에 휘둘리지 않는 선명한 에너지를 그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짜 무덤’은 나림 이병주의 ‘매화나무 인과’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 깊은 이야기다. 여러 작품 속에 작가가 풍성하게 부려 쓴 우리 옛말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가 공을 많이 들이고 애착을 진하게 느끼는 작품은 ‘꽃분이’이지 싶다. 작가는 ‘꽃분이’에 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일을 할 때 지리산 일대 수많은 피해자들이 들려준 증언이 토대가 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