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가 일상서 나눈 대화 담아내
- 나쁜 대화의 원리와 사례 보여줘

당신이 좋은 대화에 관심이 많다면, 따뜻한 물속으로 들어가는 설탕처럼 이 책 속으로 녹아 들어갈 것이다. 인상 깊은 책이다. 류재언 변호사가 ‘대화의 밀도’를 펴냈다. 협상전문가로 일하는 그는 앞서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바이블’이라는 책도 썼다.

대화를 담은 사진. 저자는 “좋은 대화는 잊을 수 없고, 나쁜 대화는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화의 밀도’에서 부드럽고 온전하게 자기 삶을 드러낸다. 핵심 낱말은 ‘대화’이다. ‘대화의 밀도’라는 책은 구체성의 세계에서 보드랍게 노닌다. 책 속 언어가 각박하거나 냉정하지 않고 따스하면서도 막연함·추상성에 갇히지 않고 구체성의 세계를 환하게 드러내는 점에 먼저 눈길은 머문다. 구체성은 글에 생동감을 선사하는 산소 공급기 구실을 한다. 그는 여는 글에서부터 ‘어느 여름날,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고 쓰지 않는다. “어느 여름 저녁, 오랜 친구 수환이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고 쓴다.

책 곳곳에 그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과정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사람의 이름이 (오로지 좋은 쪽으로) 오롯하게 많이 튀어나온다. ‘그런 사람’에 나오는 점자 아주머니 이야기는 그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저자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치료받을 때 어머니의 절친 점자 아주머니가 보여준 우정을 저자는 기억한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붕어빵을 보니 임이 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달려왔어. 네가 옛날 창원 있을 때부터 붕어빵 얼마나 좋아했니. 살아 있어 줘서 너무 고맙다.… 어머니(그러니까 임이)도 점자 아주머니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고 병실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다른 아주머니도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저자는 협상전문가이다. 끊임없이 좋은 대화에 관해 사색하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때로 예리하게 ‘나쁜 대화’의 생리와 사례를 보여준다. ‘대화폭식증’은 그 정점으로 다가왔다. “그는 매번 대화를 폭식했다. 60분 중 50분 이상은 그가 이야기했다.…어느 순간 그의 폭식성 대화가 거북해지기 시작했고 그와의 대화 시간은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보다 더, 외로웠다.” 대안도 내놓는다. “대화의 황금 비율은 3 : 7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3, 상대가 이야기하는 것이 7일 때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변호사 협상전문가 친구 사위 아들 시민으로서,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자기 삶의 결을 고스란히 차분히 내보이니, 이 책은 잘 스며든다.

일화 하나. 책 앞머리에 은사를 회고한 장면이 나온다. 변호사시험을 치른 그날 저자는 은사를 모시고 삼겹살과 소주로 저녁을 먹는다. ‘포장마차 느낌이 나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저자가 은사께 문득 묻는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차 교수님’으로 소개된 은사는 소주 한 잔 털어넣고 제자를 지긋이 보며 답한다. “재언아, 내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인생은 진심을 많이 나눈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 말미에 저자가 “누구보다 진심을 많이 나누며 살아온 차정인 교수님을 존경한다”고 썼기에 혹시나 하고 부산대에 문의했더니, 그 은사가 부산대 차정인 현 총장이 맞다는 답변이 왔다. 이 책은 구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