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학자가 쓴 악기 이야기
- 50여 점 아름다운 그림 곁들여
- 바이올린 턱받침 도입 배경 등
- 숨은 일화와 다양한 역사 소개

마리 앙투아네트는 19번째 생일에 특별히 제작된 악기를 선물로 받았다. 화려한 금박에 입체적인 부조, 아름다운 꽃장식, 미네르바 그림에 이르기까지 악기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궁정을 중심으로 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온 우주가 이 악기에 투영된 듯했다. 이 악기는 ‘하프’이다. 1774년 프랑스의 하프 명장인 나데르망이 바친 생일 선물이었다.

하프를 연주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장 밥티스트 앙드레 고티에 다고티의 그림. 북피움 제공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로 시집온 뒤 독일 작곡자이자 유명한 하프 연주자 필립 요제프 힌너로부터 하프를 배웠다. 화가 장 밥티스트 앙드레 고티에 다고티의 그림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모습을 볼 수 있다. 왕비가 하프를 사랑하자 베르사유궁에는 하프 붐이 일어났고 1780년대가 되자 프랑스에서 하프는 젊은 여성의 교양필수 악기로 급부상했다. 하프에 이렇게 재미난 역사가 있었다니, 낯설었던 악기가 친숙해진다.

‘그림, 클래식 악기를 그리다’는 클래식 악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장금은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등에서 음악 관련 수업을 하며 연구자의 길을 걸어왔다. 팟캐스트 ‘클래식빵’에서 친절한 해설자 ‘짱언니’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이올린, 피아노 플루트 팀파니 류트 하프를 소개한다. 악기와 악기 제조의 역사, 악기를 사랑한 음악가와 그들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경제 사회 문화 배경까지 살펴보았다. 악기를 주인공으로 삼아 우아하고 아름다운 유럽의 문화와 역사가 펼쳐진다.

책에 실린 50여 점의 아름다운 그림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악기가 등장하는 그림은 생각보다 많고 현재 우리가 아는 악기의 옛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후기 바로크 화가 안톤 도메니코 가비아니가 1687년 무렵 그린 ‘메디치 궁정의 세 음악가’에서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자세가 조금 이상하다. 바이올린 위치가 몸통 쪽으로 많이 내려와 있고 수직으로 세우다시피 들고 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모습은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고 턱으로 고정시켜 연주하는 자세이다. 오늘날의 연주 자세가 표준으로 굳어진 것은 1820년 독일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루이스 슈포어에 의해 턱받침이 도입되면서부터이다. 턱받침은 안정된 연주 자세는 물론 직접 피부에 닿지 않도록 악기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도 쓰였다.

바이올린 활의 개량 이야기도 흥미롭다.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적 인물인 니콜로 파가니니는 “악마와 계약했다”고까지 일컬어졌다. 파가니니의 신들린 연주는 ‘개량된 바이올린 활’ 덕분이었다. 짧고 볼록한 모양이었던 기존 바이올린 활은 19세기 파가니니의 등장 무렵에 개량됐고 파가니니는 이 새로운 활로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청중을 휘어잡았다.

폴란드 화가 헨리크 시에미라즈키의 그림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쇼팽을 만날 수 있다. 리스트가 대규모 공연장의 공공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방식을 좋아했다면,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던 성격의 쇼팽은 살롱 연주회를 좋아했다. 이 그림에는 1829년 라지비우 대공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쇼팽이 있다.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다루면서 악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악기가 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사람들의 감정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연주자의 손이 닿지 않으면 한쪽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악기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연주가 시작되면 악기는 기다렸다는 듯 오래 간직한 자기 이야기를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