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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마을 일본인 넋 기릴 시설 건립의 꿈 “韓日 민간교류 멈춰선 안돼”

부산을 양국 우호의 가교로…두 시민의 ‘아미동 대담’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2-09-29 19:45:4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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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회장의 작은 바람

- 살아갈 힘을 주는 관광지로 명성
- 해방 뒤 삶터가 된 일본인 묘들
-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고파

# 재일동포 돕는 김 감독

- 日 조선인 차별 맞서 각종 활동
- 민간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야
- 비석마을 시설 새 이정표 될 것

김명한(68) 씨는 부산 사하구의 ‘도시재생 주민공동체 천마마을’ 회장이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돌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가족과 함께 부산 감천 태극도 마을로 이사와 “평생 주민등록 한 번 안 옮기고” 여기서 살았다. 천마마을은 감천문화마을 권역에 포함되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과 아주 가깝다. 그는 감천동·아미동의 역사·사람·문화를 깊이 안다. 그런 김명한 회장에게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이웃나라 일본과 관련이 있다.

김지운(49) 씨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영상업체인 프로덕션 이스크라 21의 대표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의 회원이기도 하다. 그가 감독한 다큐는 ‘차별’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이다. 두 작품 모두 차별받고 억압당하는 재일동포의 삶과 상황을 담았다. 시민모임 봄 또한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내의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 김지운 감독이 김명한 회장의 바람(願)을 전해 듣고 던진 첫마디는 “참 좋은 생각인데요!”였다.
김명한(왼쪽) 부산 사하구 천마마을 주민공동체 대표와 김지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총괄사업단장이 지난 5일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만나 한·일 민간교류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여주연 기자 yeon@kookje.co.kr
■ “살아갈 힘을 주는 여행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김 회장과 김 감독을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로 지난 5일 초대했다. 현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담소한 뒤 근처 감천 2동 옛 감정초등학교 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먼저, 김명한 회장이 가슴에 오래 품어온 바람을 들어보았다. “감천마을은 태극도라는 종교의 영향이 강했는데, 제가 자랄 때는 아주 가난했어요. 저 또한 그 때문에 배움의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했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통장부터 현재의 주민공동체 회장에 이르기까지 마을 관련 여러 활동을 하며 ‘어떤 마을이든 문화를 매개로 재생하거나 새롭게 가꿀 때는 그 마을 또는 지역만이 가진 역사·문화가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을 키웠다. “어떤 관광통계를 보니 많은 장애인이 감천문화마을을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꼽았더라고요. 저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감천 마을 자체가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힘든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입니다. 그런 곳에 가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힘을 내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으로 저는 받아들였어요.”

김 회장은 감천문화마을이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여행지’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이겨내고, 통과하며 지금에 이른 마을이며 동시에 유명한 여행지로 거듭난 곳이기 때문이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일제강점기 부산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의 묘비가 많았던 마을로 유명하다. 해방과 1950년대를 거치며 부산 인구가 엄청난 기세로 팽창해 삶터가 극도로 모자라게 되자 형편이 어려웠던 많은 부산 사람이 일본인 무덤과 묘비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품은 사연이다.

천마산 자락과 까치고개 사이에 자리한 감천문화마을 주변에도 무덤이 많았다고 한다. “제 어릴 적 기억으로는 아미동 쪽에서도 상여가 자주 넘어왔다. 차이가 있다면 감천 쪽은 우리나라 사람이 묻혔고 비석마을에는 일본인 묘지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김 회장은 회고했다. 그는 “알맞은 터를 골라…마음 같아서는 두 마을을 꼭짓점처럼 잇는 이곳 옛 감정초등학교 자리 어디쯤에 그런 영령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죽어서 아미동 비석마을에 봉안됐던 일본인들의 넋을 달래는 소담한 시설을 짓고 싶은 것이 나의 오래된 바람”이라고 말했다.

■ 서로 돕는 사람들

천마마을 회장 김명한 씨(왼쪽), 다큐멘터리 감독 김지운 씨
듣고 있던 김지운 감독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구했다. 한·일 관계가 예민한 영역이어서 김 회장의 구상이 무언가 놓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리고 김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품 활동과 시민모임 봄의 총괄사업단장 활동을 통해 일본 내에서 벌어지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꾸준히 비판해왔다. ‘다른 관점’에서도 이 제안에 관해 두루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예컨대 그가 김도희 감독과 공동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차별’은 일본 정부가 UN의 반복된 시정 권고도 듣지 않고 재일조선인학교를 무상 교육 대상에서 배제해온 역사와 현황을 ‘부당한 차별’이라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시민모임 봄은 최근 재일동포 작가의 책 출판과 강연, 재일동포 극단의 공연 유치, 일본의 전문가 초청강연 등을 활발히 진행한다. 그러나 시민모임 봄이나 김 감독은 일본 정부의 특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비판하고 일본 극우의 주장에 굴하지 않는 것이지, 일본 민간단체나 개인과 활발히 교류하려 노력하고 우호를 중시해왔다고 한다.

“2009년께부터 일본에 드나들며 재일동포와 만나고 함께 활동하며 자주 들은 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차별받아온 재일동포를 열심히 진심으로 돕는 사람도 일본인들’이란 말입니다.” 일본 많은 지역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회(會)’라는 민간단체가 조직돼 있어 조선학교 차별에 반대하며 재일동포를 돕는데 구성원은 일본 시민이다. 이들이 구성한 소송단의 단장도 다 일본 사람이고, 여기 속한 변호사가 일본 전국에 200~300명 있는데 극소수 재일동포를 빼면 모두 일본 인권변호사회 소속이라 한다.

김 감독은 비슷한 예를 많이 들려줬다. “군함도부터 사할린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실태를 샅샅이 조사해 책을 무려 57권 펴낸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언론인 우에무라 다카시, 재일동포를 위한 소송을 주도한 나고야 시민, 재일동포 극단의 연극을 학교로 초청해 학생들과 함께 보고 토론하는 교사들….”

■ 부산에서 시작하자

올해 1월 부산 첫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피란민 주거지(빨간 선 안). 국제신문 DB
김 감독은 이렇게 매듭지었다. “만약 비석문화마을에 묻힌 일본인의 넋을 달래는 소담한 시설을 김명한 회장께서 설치하게 된다면 두 나라 민간 교류에서 돋보이는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시민모임 봄의 이용학 대표께도 이와 관련한 의견을 구했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서로 이해하고 연대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가 되어 준 묘지에 묻힌 사람들의 넋을 위로해왔다. 감천문화마을과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근처 작은 사찰 대성사는 오래 전 비석 일부를 옮겨놓고 때맞춰 제사를 지내고 있다.(부산시 공식 매체 ‘다이내믹 부산’ 온라인판)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를 보면 비석마을 주민들도 삶터를 내준 묘지 주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소박하게나마 넋을 달래주어 왔다.

김 회장이 말을 이었다. “내가 10살 때쯤 우리집이 구멍가게를 이 근처에서 했어요. 그때 한 일본인 아주머니가 때때로 우리집에 와서 머물며 일을 도와주곤 했지요. 그렇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분이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가 쫓겨나 홀로 살게 됐다는 사연을 알게 됐죠. 그분 책이며 일본 동전 같은 소지품이 지금도 집에 있어요. 어린 저는 그분을 보며 왠지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김 회장의 ‘작은 바람’은 어쩌면 그때부터 자랐는지 모른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다. 이웃끼리는 갈등도 겪지만 늘 싸우며 살 수는 없다. 그러면 모두 손해다. 서로 이해하며 사귀어야 한다. 정치인끼리는 싸우더라도 민간교류는 계속해야 한다. 그 시작을 부산에서 하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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