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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뜨거운 피’ 천명관 감독

“소설가로도 살아보고 영화감독도 해봤으니, 꽤 괜찮은 삶 아닌가”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2-04-05 19:39:3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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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영화 연출 도전 위해
- 직장 관두고 충무로서 잡일도
- 이후 ‘고래’로 입상해 작가의 길
- “원작 영화화하게 된 김언수 작가
- 내게 연출 제안해 오랜 꿈 이뤄”

- 부산 밑바닥 건달들 생존기 그려
- 기장 창원 울산 등 누비며 촬영
- 경기도서 자라 사투리 표현 곤욕
- 토박이 정우·최무성 도움 받아

서른 살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꾸다가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입봉을 했다. 무려 3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돌고 돌아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감회가 있지 않다고 한다. “너무 오래 걸려서 뜨거운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한, 아직은 우리에게 소설가로 친숙한 천명관 감독의 말이다.

보험 외판원을 비롯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0세에 영화에 대한 꿈을 꿔 충무로에 발을 디딘 천 감독은 연출부를 원했지만 제작사의 잡일만 하며 지냈다. 글 재주가 있어서 10여 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판을 돌아다녔지만 연출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2003년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이듬해 장편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다.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을 받거나 기존 서사 구조의 틀을 따르지 않지만 흡인력 있는 이야기 전개로 천재 작가라는 말까지 들었다. 천 감독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을 받은 적도 없는 작가였기에 ‘이게 소설이냐’는 말도 들었다.

“‘고래’가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후속작을 굉장히 기대했다. ‘네가 얼마나 잘 쓰는지 또 두고 보자’ 식이 많았는데, 그 이후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제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거듭해서 증명하면서 살고 있다.”(웃음)

그렇게 소설가로 계속 살 것 같았던 천 감독에게 생각지도 않던 연출 제안이 들어왔다. 바로 부산 출신의 김언수 작가가 자신의 소설 ‘뜨거운 피’를 영화로 연출해달라고 한 것이다.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이 하면 아까울 것 같았던 ‘뜨거운 피’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한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의 감독 천명관. 키다리스튜디오 제공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작가에게 천 감독은 고향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권하곤 했다. 그리고 ‘뜨거운 피’라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틈틈이 원고를 봤고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그것이 연출로까지 이어졌다.

“김 작가가 소설이 출간되기 전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가 형이 아니겠냐’면서 연출을 맡아달라 하더라. 제작자도 같은 말이었는데, 제가 영화를 연출한 적이 없었으니까 너무 뜻밖이었다.”

연출 제안을 받은 천 감독은 소설이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연출하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에 욕심을 부렸다. 실은 ‘뜨거운 피’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자신의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로 데뷔하려고 했지만 김 작가의 제안으로 선회하게 됐다.

‘뜨거운 피’는 1993년 부산, 더 나쁜 놈만 살아남는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와 그곳에서 발버둥치는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다.

“소설 ‘뜨거운 피’의 무대가 마음에 들었다. 구암은 해운대와는 달리 낙후된 지역이어서 영화 대사처럼 ‘묵을 게 없는, 하지만 누군가 먹으려 하면 반드시 피를 봐야 된다’는 느낌이 있다. 그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1990년대라는 점이 많이 끌렸다.”

그런데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아예 원작이 없는 것을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90년대 구암이라는 배경과 주변 지역과의 갈등,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역학 관계 등은 소설로 읽을 때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영화로 표현하려니까 두 시간의 상영시간이라는 가장 큰 장애가 생겼다. 두 시간 안에 그런 정보를 다 담아내는 한편, 단지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드라마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꾸며야 했다.”

■부산 냄새를 담기 위한 노력

1993년 부산,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와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 ‘뜨거운 피’.
‘뜨거운 피’는 부산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누아르 영화다. 그래서 천 감독이 부산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경기도 출신이다.

“제가 부산 출신이 아니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연출가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 지도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대사를 통해서 하는 것인데 제가 사투리 대사의 뉘앙스를 잘 모르니까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부산 출신 감독이라면 더 확신을 갖고 연출했을 텐데 저는 늘 의심스러웠다.” 연출을 하면서 부산 사투리의 뉘앙스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척 컸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많이 의존했다. 특히 정우 지승현 최무성 등 부산 출신 배우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그런데 부산 사투리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 만큼 타지역 관객이 대사를 못 알아듣는 단점이 생겼다. “실제로 후반 작업을 하면서 못 알아듣겠다는 반응이 있어서 자막을 넣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100% 못 알아듣더라도 어떤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으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너무 못 알아듣는 대사는 후시 녹음을 통해서 조금 더 잘 전달될 수 있게 했다.”

사투리와 함께 부산 정서를 잘 표현한 것은 역시 촬영지였다. 1990년대 부산의 변두리 항구를 표현하기 위해 기장, 김해는 물론 진해 마산 창원 울산 등 부산 인근 도시에서 1990년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해수욕장 장면을 촬영할 때는 기장의 해변 300m 정도를 전부 세팅한 후 천막과 파라솔, 간판 등을 제작해 1990년대의 느낌을 배가시켰다.

촬영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에서 주요 공간으로 등장한 만리장 호텔 촬영이다. 가장 부산 같은 공간인데 막상 촬영은 전남 목포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부산과 부근 도시의 호텔을 모두 찾아 다녔다. 90년대가 먼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막상 카메라로 들여다보면 찍을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목포에 있는 호텔이 우리가 생각한 이미지, 사이즈가 비슷했다. 문제는 그 호텔이 바닷가 부근에 있지 않았다는 점인데, 결국 컴퓨터그래픽으로 해결했다. 지금도 만리장 호텔의 분위기가 충분히 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설과 영화, 그리고 영화감독

기장의 해변 300m 정도를 전부 세팅한 후 천막과 파라솔, 간판 등을 제작해 1990년대의 느낌을 배가시켰다. 키다리스튜디오 제공
소설가로 15년을 살았고, 이제 영화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딘 천 감독에게 소설과 영화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천 감독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대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설은 혼자 쓴다. 단어 하나하나 작가가 결정한다. 편집자가 조언을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다. 반면에 영화는 많은 사람이 같이 작업한다. 그래서 수 많은 검열이 있다. 특히 가장 무서운 것이 자본의 검열이다. 이야기가 재미있냐, 대중들이 좋아하겠느냐, 과연 투자한 돈의 본전을 뽑을 수 있느냐 같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 어렵다.”

시간의 제약이라는 부분도 덧붙였다. “소설은 시간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내가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2시간 안에 담아야 해서 플롯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영화는 플롯의 예술이라는 말도 한다.”

이제 천 감독은 영화감독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젊었을 때, 뜨거웠을 때, 제 꿈이 정말 간절했을 때 감독이 됐으면 지금과 조금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제 인생에 대해서 느끼는 감각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소설을 쓰게 됐다. 이 영화를 할 때 ‘내가 죽기 전까지 영화 한 편을 연출하면 내 인생은 꽤 괜찮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소설가로서도 살아보고 감독도 해봤으니 말이다. ‘영화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자체로 내 인생은 참 재미있는 인생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약간 욕심도 생기고 한번 해 보니까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지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천 감독은 애초 데뷔작으로 생각했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각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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