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頌

　 - 서상만





　중랑천 변에서, 철삿줄에 감겨

　몸살 앓고 있는 접시꽃나무 하나

　맨손으로 겨우 뿌리만을 캐 와

　목이 긴 화분에 깊숙이 모셨는데

　달포도 넘게 재활의 기로에서

　침묵으로 질척거리더니

　기원에 답하듯 기사회생하였다

　봄 4월부터 10월 가을까지

　무려 50개도 넘는 꽃망울을

　주렁주렁 무성하게 꽃대에 달아

　피고 지고 숨 가쁘게 출렁이는

　진홍색 꽃차례를 거푸 열어준다

　세상에 이런 꽃도 다 있나

　그래 보니 그동안 눈먼 나는

　한두 잎 핀 꽃에도 그냥 홀딱-

　반해버리는, 어이없는 사람

　정처가 바뀌면 그냥 그 자리

　주저앉아 버리는 나의 고정관념

　부끄럽구나, 너무나 나와 다른

　어느 반역의 불꽃 같아



　 시집 ‘그런 날 있었으면’에서

	마치 접시에 과일을 담은 듯, 꽃을 가득 담은 예쁜 신발들이 자박자박 걸어서 소풍을 간다.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30도 넘는 불볕더위 속에 서상만 시인님의 시집 ‘그런 날 있었으면’이 눈부시게 하얀 구름신사처럼 가만히 내려왔다. 이번이 열세 번째 시집이다. 거의 매년 시집을 낸다는 건 감히 꿈도 못 꿀 일인데, 또 한 권 시집을 안겨주며 ‘시인’이 이런 것이다 말하지 않고 ‘시인’이라 말하는 이에게 거울 한 번 들여다보게끔 한다. 서상만 시인님을 처음 뵈었던 게 최계락문학상을 수상하시던 2013년 국제신문사에서였던 것 같다. 조영서 시인님과 이유경 시인님 세분이서 삼총사처럼 늘 함께 어울리셨는데 문단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한 듯 치열하게 시인의 길을 걷는 모습에 존경의 마음으로 시집 속 시 한편을 펼친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불국산에서 발원해 의정부를 지나 남류하고, 하류인 성동구 송정동에서 서류해 사근동에서 청계천과 합류한 뒤, 한강 본류로 유입한다. ‘접시꽃頌‘’은 ‘중랑천 변’을 걷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푸른 생명을 시적 화자의 집 화분에 옮겨 심어준 뒤 꽃을 피워낸 접시꽃을 칭송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접시꽃은 6월에서 9월까지 주택이나 들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길을 걷던 화자가 접시꽃나무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이미 내면 정서에는 접시꽃이 피어나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뜻이다. ‘달포도 넘게 재활의 기로에서’ ‘질척거리’던 것이 ‘기원에 답하듯 기사회생’한 것도 기쁜 일인데 ‘4월부터 10월’까지 나팔을 내미는 ‘50개도 넘는 꽃망울을’ 바라보며 행복했을 화자의 얼굴에도 접시꽃이 피어 아직 시들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일이건,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얻게 되는 뜻밖의 즐거움은 욕심을 비운 내면에서 피는 꽃이라는 생각이다.

시적 화자는 접시꽃을 칭송하는 것으로 모자라 환경이 주어졌을 때 제 에너지를 한껏 쏟아내는 접시꽃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 같다. ‘정처가 바뀌면 그냥 그 자리’ 주저앉아 버리는 자신은 ‘고정관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저편에 ‘다른 어느 반역의 불꽃’ 같은 미지의 세상을 꿈꾸면서.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