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게 시집온 아테네 여자 크산티페예요. 저에 대한 후대 평이 별로란 걸 압니다. 아리스토파네스 영감이 연극 ‘구름’에서 저와 남편을 까발린 후 전 드센 여자 전형이 됐죠. 영국에서 글깨나 쓴다는 셰익스피어는 뭐랍니까.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나오는 남자 페트루치오는 대놓고 저를 악처라 불렀지요.

네덜란드 레이어 반 브롬멘델 작 ‘소크라테스에게 물 붓는 크산티페’.

네덜란드 화가 브롬멘델은 1655년 제가 남편 머리에 물을 들이붓는 그림까지 그렸다니깐요. 한번은 집안일 좀 돌보라고 잔소릴 했더니 손님과 얘기만 할 뿐 반응이 없어 물바가지를 안겼더니 “천둥이 친 후 비가 오는 법이지”하며 허허 웃더군요. 세상에! 철학자 남편과 한번 살아보세요. 그러곤 “내가 아내 잔소리를 견뎌낸다면 세상에서 상대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거요”라 했다나요. 제가 남편을 대철학자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빈정대지 마세요.

집안 얘기 좀 할까요. 남편이 저보다 40여 살 많다는 건 아시죠.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건 아테네 사람이면 다 알지요. 소크라테스가 무능해서가 아니에요. 몸도 건강하니 늘그막에 애를 셋이나 낳았죠. 철학자가 되기 위해 가난을 선택했으니 속이 터지죠. 그는 물려받은 석공소조차 안 돌봐요. 할 수 없이 제가 떠안아 식구를 먹여 살렸죠. 소크라테스가 전장에 나갈 때는 군장도 야무지게 챙겨주었으니 뒷바라지하지 않았다고는 못하겠죠? 저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한 여성 수학자인 히파티아처럼 고등 교육을 받았다면 우아한 아내가 되었을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저는 가르치지 않았는지!

전 남편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어요. 시끄럽게 운다고 저를 감옥 밖으로 내보냈죠. 막내는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아직 어린데 과부 팔자니, 통곡하지 않을 수 있나요. 이제 악처 크산티페는 잊어주세요. 어릴 때 나이 많은 철학자에게 시집와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반려자일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