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본지 신춘문예로 등단
- 15년 만에 두 번째 단편 묶어내
-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질문 던져

트라우마에 감금된 사람들. 이미욱(사진)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밤이 아닌 산책’에서는 어떤 시점과 사건, 상황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다뤘다.

언제 생겼는지, 왜 생겼는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등장인물의 상처는 한계까지 억압됐다가 타인에 의해 뒤늦게 발견되고, 마침내 고름 터지듯 흘러나온다. ‘밤이 아닌 산책’의 여자는 ‘머리에 삐죽삐죽, 입에 삐쭉삐쭉 뿔이 나 있는게 누군지 아느냐, 바로 너’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몸에 난 뿔(고통)을 감지한다. ‘여기 없는 날들’의 그녀는 ‘자동문에 갇혀 버린 거냐’는 생면부지 남자의 말을 들은 날 자신을 괴롭히는 통증의 실체에 다가간다.

2005년 24세 젊은 나이로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지역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이미욱 소설가는 등단한 지 8년 만인 2013년 첫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를 냈다. 그로부터 7년뒤인 올해 두 번째 작품집을 냈으니 다작하는 소설가는 아니다. ‘조용한 고통’으로 점철된 작품들을 읽어보면, 글쓰기가 만만하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유 모를 곤경,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린다. 외부적 요인이나 가해자가 있는 고통조차도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파묻어버리고, 드러내거나 소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의 무의식 속에 묻혀버린 상처들은 나중에 조금씩 터져나오더라도,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처럼 한 번의 통곡과 함께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아이의 죽음, 육아와 고립에 허약해진 몸과 마음, 무의식 속 부모에 관한 트라우마가 쉽게 치유될 리 없다. 넘기지도, 뱉어내지도 못한 채 입안 가득한 국밥처럼 막혀있던 고통은 의외로 가볍게 툭 치는 듯한 위로로 봇물이 터지기도 한다. “울어도 된다. 실컷 울어야 살지” 처럼.

이미욱 소설가는 자신의 두 번째 소설집을 이렇게 표현한다. “한 존재를 향한 나의 집요한 시선이 묻어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또 다른 나의 존재를 만나려고 했던 나의 발버둥이었다고 할까요. 소설 속 인물들은 내부에 있는 자신(삶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고자 몸부림쳐요. 살아있음이란 무엇인지 소설 속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묻는 게 저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집의 간격이 길었던 이유를 물었다. “젊을 때 등단을 했어요. 소설을 정말 좋아해서 그냥 쓰고 싶다는 마음이 다였는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까 내 작품뿐만 아니라 남의 작품도 보이고, 소설 자체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졌어요. 문단 선배들과의 격차도 너무 크게 느껴져 위축되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많이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에 다니고 나중에는 학생도 가르치고 결혼도 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네요.”

소설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생활과는 무관할까. 작가는 말한다. “결코 내 삶이 어두운 시기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밤이 아닌 산책’에 나오는 밤처럼 내 내면의 한구석이 어둡고 축축했나봐요. 어둠을 밝히는 건 어둠이라고 생각해요. 이 소설을 쓰고 나니 아주 개운해졌어요.”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