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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위주의 단일 언어공동체는 환상”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 백낙청 임형택 정승철 최경봉 지음/ 창비/ 1만6000원

  • 국제신문
  •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
  •  |  입력 : 2020-10-15 20:00:3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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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자 임형택 등 전문가 4명
- 좌담회 발언 중심으로 엮은 책
- 한국어 근현대사 다각도 탐구
- 소통력 못지않게 창조성 강조

‘한글’은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은 국보이자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관리하며,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아 매년 기념한다. 그런데 ‘한글’을 우리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것에 비해, 한국어의 역사나 어문생활의 문제 등에 관한 탐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책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임형택 백낙청 최경봉 정승철(왼쪽부터). 창비 제공
책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은 한국어의 근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말을 풍부하게 가꿔나가기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지난 4월 계간 ‘창작과 비평’ 주최로 열렸던 좌담회(근대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희망찬 오늘)에 참여한 한국학·한문학자 임형택, 문학평론가 겸 영문학자 백낙청, 국어학 전문가 정승철과 최경봉의 발언을 중심으로 엮었다. 또한 다양한 부록을 함께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국어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음운과 형태 변화 등 언어 내적인 변곡점에 주목해 시대 구분을 한다. 문헌 자료가 거의 없는 고조선, 부여, 한(韓) 등의 언어를 선사(先史)로 하고, 신라어부터 현재까지의 국어를 고대(10세기 이전의 신라어), 중세(고려~조선전기), 근대(17~18세기), 현대(20세기 초~현재)로 나누는 방식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시대 구분이 세계사적인 개념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어의 전반적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일반적인 시대구분과 연관지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 예로 ‘근대’를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언어적 대응으로서 ‘근대 한국어’ 문제를 숙고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우리 어문생활의 실제와 변천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고, 올바른 진단과 생산적인 전망도 가능해진다.

주시경의 ‘국어문법’ 육필원고.
저자들은 우리 국어 문화를 지켜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민족문화운동 역사도 되짚어본다. 국어말살정책을 편 조선총독부에 맞서 고유의 국어규범을 확립하고 표준어 목록을 정리해 사전을 편찬하고자 한 국문연구소, 표준어사정위원회, 조선어학회의 노력부터 시대별 문인들의 역할도 소개한다.

현재의 어문생활과 관련해서는 표준어 운동이 불러온 부작용을 지적한다. 해방 후 지식인이 주도한 일방적인 언어 규범화와 권위주의 정권의 엄격한 국어순화운동은 사투리에 대한 극단적인 비하풍토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하나의 국가를 단일한 언어공동체로 보는 건 편견이자 환상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가 언어공동체의 공용어는 표준어가 아닌 ‘권장어’로 불러야 하며, 바른말과 틀린말의 구분이나 사투리 여부와 관련 없이 자신이 원하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의 미래를 위해서는 언어 소통력을 강화하면서도 창조성을 추구하기 위한 치열한 탐색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와 더불어 향후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해 공통어 확장을 이룰 수 있는 국어정책의 방향성도 고민해볼 문제다. 책은 이질화된 언어를 인위적으로 단일화할 것이 아니라 남북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우리말의 공동영역을 확장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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