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디셀러 ‘늙은 부부 이야기’
- 영화문법 적용한 촬영작 개봉
- 英·美 등선 영상화 작업 보편화
- 국내선 공공극장이 먼저 시도
- “부가수익 창출 어려운 연극계
- IPTV 등 관람 유도해 도움
- 영화계도 중저예산 작품 대안”
최근 ‘늙은 부부이야기: 스테이지 무비’가 개봉하면서 2003년 대학로 무대에서 초연한 이후 계속해서 무대에 오른 한국 연극의 스테디셀러가 스크린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영화는 지난해 9월 21일~10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늙은 부부이야기’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2013년부터 예술의전당이 진행해온 공연예술의 고화질 영상화 프로젝트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으로 제작됐지만, 공연에 영화문법을 적용한 스테이지 무비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국립극장이 화제의 연극을 생생한 영상으로 담아 전 세계에서 상영하고 있는 공연 영상 콘텐츠 ‘NT 라이브’와 비슷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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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부터 예술의전당을 이끌어온 유인택 사장. 공연을 영화화한 스테이지 무비를 통해 공연예술의 부가 수익을 높여 선순환 구조를 이루길 기대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
예술의전당이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인택(65) 사장 덕이다. 그는 1990, 2000년대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 ‘미인’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 ‘과속스캔들’ ‘쌍화점’ 기획 제작 투자에 참여한 영화인이자, 뮤지컬 ‘호기심’ ‘구름빵’ ‘광화문 연가’ 연극 ‘변방에 우짖는 새’ ‘아리랑’을 기획한 공연예술인이다.
유 사장은 “영국 NT라이브나 뉴욕 매트의 뮤지컬 공연 영상, 중국의 오페라 영화와 비교하면 한국 작품은 뒤처졌다”며 “공연 영상화 작업은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예술의전당 같은 공공극장이 대한민국의 공연 영상화 작업의 품질을 높이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공연예술 외연 확장 ‘스테이지 무비’
연극이나 뮤지컬을 담은 영화를 보면 직접 배우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지루하게 다가온다. 또 관객이 아닌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제작한 느낌도 든다. 유 사장은 ‘공급자 중심’으로 제작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간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특히 연극은 배경이나 음악이 거의 없고 대사 위주니까 더 그렇다”며 “이번 영화는 소비자 관점에서 시작했다. 소비되지 않는 콘텐츠가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영화문법을 적용했는데, 공연 영상화 사업을 해온 직원들이 보고 재미있다고 한다”고 했다.
기존 공연예술 영상화 작업이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면, 이번에는 한 발 더 나가 공연 실황 영상과 공연 무대에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 촬영한 다양한 앵글의 영화용 영상을 편집해 말 그대로 ‘스테이지 무비’의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연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입 영상을 야외에서 촬영했으며, 연극과 다른 음악을 사용해 새로움을 더했다.
그렇지만 흥행은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유 사장은 “영화를 업으로 수십 년 일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성공하리라 보지는 않는다. 다만 IPTV나 OTT에서는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공연예술은 부가 수익 창출이 어려운데 스테이지 무비가 부가 수익을 이룰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다. 어렵게 연극 작업을 하는 창작자와 극단에 수익이 돌아간다면 공연계에서 수십 년간 말해온 선순환 생태계의 실천적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는 스테이지 무비가 공연 관람객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유 사장은 “오히려 관객층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장감과 배우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존 관객에 스테이지 무비를 보고 실제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더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테이지 무비는 영화계에도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다. 그는 “한국 영화계는 중저예산 영화가 설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양극화는 시작됐고 스테이지 무비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처음부터 한 작품으로 연극과 영화를 제작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를 기획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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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도입부는 영화처럼 야외 촬영…배경음악도 연극과는 다르게…다양한 앵글로 더 가까워진 무대.
예술의전당 제공 |
■“‘늙은 부부이야기’ 첫 작품 적격”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2003년 손종학 김담희 주연으로 초연된 이래 오영수 이순재 양택조 사미자 성병숙 예수정 사미자 등 명배우들이 거쳐 갔다. 이번 작품에는 김명곤 차유경이 출연했다. 남편과 사별 후 세 딸을 출가시키고 홀로 살아가는 욕쟁이 이점순과, 부인과 사별 후 홀로 두 아들을 키운 날라리 박동만이 펼치는 황혼 로맨스가 긴 여운을 남긴다.
유 사장이 ‘늙은 부부이야기’를 첫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예산이 없어서 출연진이 많으면 안 됐다. 2인극이라서 적은 예산으로 시도하기 좋았다”고 설명했다. 연극을 영상화할 때 저작권이나 초상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늙은 부부이야기’는 그 부분에서 저작권자나 배우가 흔쾌히 동의했다. 공연 제작비에 1억5000만 원, 영상화 제작비에 1억2000만 원이 들어갔다.
스테이지 무비 차기작으로 연극 ‘여자만세2’ 뮤지컬 ‘굿모닝 독도’ 창작 로맨틱 코미디 오페라 ‘춘향2020’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 사장은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공연 영상의 중요성을 인지했는데, 앞으로 예산이 높게 책정된다면 내년에는 연극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 장르의 영화화를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공공문화시설이다. 이 때문에 예술의전당의 행보는 다른 공공문화시설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는 “더 올라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난 1년 5개월간 나는 소신껏 일해왔다. 해외 예술기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국고보조율도 높이고, 기부 협찬도 활성화하고, 다양한 민간 부문 재원 조성도 시도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전국의 공공문화시설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예술의전당의 변화를 통해서 문화예술에 기여를 한다면 예술 인생에 큰 보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했고 임기는 3년이다. 아시아문화기술투자 대표, 서울시뮤지컬단장, 동양예술극장 대표 등을 역임했다.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