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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 '소리꾼'의 이봉근

국악 명창의 영화배우 변신…"뜨거운 소리로 관객 울리겠다"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6-30 18:52:0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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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간 국악 공연만 1500회
- 전인삼·성창순 등에 사사 받아
- 국악 대중화 공로로 장관상도

- '심청가' 재해석 … 학규 역 맡아
- 소리하는 장면 현장 그대로 녹음
- 하이라이트 8분 원테이크 촬영
- 200여 명 제작진 눈물 펑펑 쏟아

- "생계 힘들까봐 연기 피했는데
- 이젠 단역이라도 정극 하고파"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 ‘판’과 한을 담은 노래 ‘소리’가 합쳐진 판소리. 그 판소리의 중심인 소리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진짜 소리꾼과 함께 관객을 찾아온다. ‘서편제’ ‘천년학’ ‘도리화가’ 등 판소리를 주제로 한 영화의 맥을 잇는 ‘소리꾼’(개봉 1일)은 정통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조정래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한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리더 박승원이 음악 총감독을 맡아 판소리 뮤지컬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

‘소리꾼’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국악을 대중에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은 국악인 이봉근이 주인공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돌고 돌아가는 길’ ‘사랑의 굴레’ ‘봄날은 간다’ 등의 가요를 국악으로 승화시켜 2회 우승과 감동을 선사한 바 있어 ‘소리꾼’이 들려줄 ‘찐’ 판소리가 더욱 기대된다.

명창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해 연기와 소리,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봉근을 만나 국악 뮤지컬 영화 ‘소리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소리꾼

국악 뮤지컬 영화 ‘소리꾼’으로 영화배우로 변신한 국악계 명창 이봉근. 전남 남원 태생으로 국악을 대중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동편제의 발상지이자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이 된 전라북도 남원은 태어나면 소리 한 자락은 한다고 할 정도로 판소리가 자연스럽게 체화되는 곳이다. 이봉근은 그곳에서 서예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원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분은 추임새 정도는 기본이다. 서예 집안이어서 아버지께서도 서예를 하셨는데, 어려서 제가 왼손잡이인데다가 악필이어서 상심하셨다. 서예에 재능이 없는 저에 대해 고민하시다가 당신의 취미이자 전통성이 있는 판소리를 추천하셨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리를 시작한 이봉근은 명창 전인삼 선생 밑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가르침을 받았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명창 성창순 선생과 명창 안숙선 김일구 선생도 사사했다. 그리고 지난 26년간 국악 관련 공연만 1500회 이상 펼친 정통 소리꾼이다.

국악인이 영화배우가 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물론 ‘서편제’의 오정해처럼 멋진 연기를 보여준 경우도 있지만 그가 거의 유일했다. 그런데 이봉근에게 연기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한예종 때 연극을 했고, 졸업하고는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창단 멤버로서 공연을 했다. 연극 ‘서편제’에서 김명곤 선생님이 연기한 아버지 역할을 맡기도 했다”며 은근히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소리꾼’은 북 치는 고수로서 국악계에서도 유명한 조 감독이 대학시절부터 꿈꿨던 영화다. 전작인 ‘귀향’이 358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자 벼르고 별렀던 판소리 영화를 다시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소리를 구현하고자 실제 소리꾼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로 큰 결심을 했다.

타루 시절 이봉근과 조 감독은 같은 창단 멤버이자 소리꾼과 고수로서 자주 만났다. “친분으로 배역을 맡은 것은 아니다. ‘소리꾼’의 오디션 공고가 난 것을 조금 늦게 다른 배우에게서 들었다. 공정성을 위해서 연락을 안 하신 것 같다. 오디션 준비만 3, 4개월을 했는데도 막상 연기를 하려니 너무 떨렸다.” 무대에서는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그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니 너무 떨렸던 것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오디션을 치른 2주 뒤에 연출부에서 연락이 왔다. 주인공 학규 역에 합격했다는 통보였다. “조 감독님에게 직접 듣진 못했지만 오디션 연기를 하는 중간에 학규의 눈빛이 나와서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심청가’ 들어있는 액자 영화

조선 영조 10년,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자매조직단에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리꾼’. 리틀빅픽처스 제공
‘소리꾼’은 조선 영조 10년, 소리꾼 학규(이봉근)가 자매조직단에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시력을 잃은 딸 청이(김하연), 고수 대봉(박철민)과 함께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아내를 찾는 과정과 학규가 저잣거리에서 세 번에 나눠 부르는 ‘심청가’가 교묘하게 섞이는 액자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가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닌 영화 속 인물 학규로 보이기를 바랐다. 판소리는 도구고, 드라마와 인물이 잘 살도록 노력했다. ‘심청가’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완창하면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을 축약해 세 부분으로 나눠 불렀는데, 판소리의 형식미보다는 정서 전달에 중점을 뒀다.”

‘심청가’ 중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부르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이봉근의 모습을 담은 ‘소리꾼’의 포스터.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죄인으로 몰린 학규가 목숨을 걸고 ‘심청가’에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이다. “가장 중요한 8분을 원테이크로 촬영하는 장면이어서 3, 4개월 연습했다. 감독님이 촬영 전에 ‘보조출연자도 많은데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울려야 한다’고 하더라. 부담이 확 왔다. 첫 번째 촬영에서 첫 소절을 뱉다가 스스로 멈췄다. 그리고 5분 정도 집중하고 본격적으로 소리를 했다. 그때 표정을 찍은 것이 ‘소리꾼’의 메인 포스터로 이봉근에서 학규로 들어가는 찰나다. 지금도 포스터를 보면 그때 감정이 떠올라 먹먹하다.”

이봉근의 소리가 시작되고 200여 명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숨을 죽였다. 처음에는 중요한 장면을 찍기 때문이었지만 점차 그의 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가 소리를 마쳤을 때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가 묘했다. 학규가 돼서 소리를 하는데 이렇게 소리를 하면 아내를 살리고 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득음을 했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소리가 다 끝나고 돌아보는데 모두 펑펑 울고 있더라.” 제작진은 소리를 하는 장면들을 현장 사운드 그대로 녹음했다. 배우의 생생한 감정과 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11월 말 기온 영하 10도를 뚫고 나오는 이봉근의 뜨거운 소리를 스크린에서 들으면서 촬영장에서 2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모두 눈물을 흘렸을지 이해가 됐다.

■국악인 연기에 빠지다

첫 영화를 내놓는 이봉근은 설레고 있다. 자신의 연기와 소리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줄지 너무 기대된다. “‘소리꾼’은 판소리 한 판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자부심이 있다. 촬영하면서 조 감독님과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설득하는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토론했다. 준비하는 과정도 무척 길었다. 소리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고뇌와 고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인터뷰 막바지에 연기와 관련한 과거 이야기를 밝혔다. “어렸을 때 연극을 하면서 생계적으로 힘들어서 연기를 안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는 분들을 보면 안에서 피가 끓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활활 타는 불통에 기름을 붓게 됐다. 연기를 하는 순간 집중을 하더라. 영화를 찍기 전과 찍는 나, 찍은 후의 내가 많이 바뀌어 있다.”

‘소리꾼’으로 과거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연기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는 정극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아직은 연기 밑천이 없어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역이라도 어디서든 연기할 의향이 있다. 지금은 성장 과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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