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 작가 김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바로 문장과 표현의 힘이다. 3년만에 내놓은 신작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는 그 힘이 더욱 빛을 발한다. 소설은 긴박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독자를 종횡무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등장인물의 사사로운 감정에 개입하지 않는, 자칫 무심하게 느껴지는 간결한 문장은 역설적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낸다.

이야기의 무대는 가상의 시대와 공간, 그것도 아득하고 막막한 시원의 한 지점이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은 나하.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북으로는 초, 남으로는 단이 소수부족들을 통합해 지배 세력을 형성한다. 초는 초원에서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 집단이다. 문명을 등진 채 육체의 힘에 기대 야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성을 쌓지 않고 신전과 무덤이 없으며, 문자를 배격한다. 반면, 단은 땅에 들러붙어 소출에 기대어 사는 농경 집단이다. 문자를 숭상하며 거대한 왕궁을 짓고 전각을 세운다. 이 두 세력 사이의 전쟁은 숙명과도 같다. 김훈의 작품 속에서 전쟁은 주요 장치다. 임진왜란(‘칼의 노래’) 병자호란(‘남한산성’) 신라의 가야정벌(‘현의 노래’) 등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는 야만과 문명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전쟁으로 표출된다.

소설의 중심에 두 마리의 말이 있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던 신월마 혈통의 토하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 혈통의 야백이다. 말은 각각 두 나라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한다. 말을 이야기의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그 어떤 젊은 작가의 소설보다 활달하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물론 자연과 동물에 대한 묘사까지 살아 숨 쉬듯 정교하다. 야만과 문명이 충돌하는 현장은 더없이 처절하고, 잔혹하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김훈은 “문명과 야만은 지금도 뒤엉켜 있다. 이 전쟁을 문명의 탈을 쓴 현대의 야만성에 빗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근사한 이념으로 포장되건 인간의 욕망이 발흥하는 곳에 아수라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이들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임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