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나지도…’ 오픈스페이스 배
- 설치미술·미디어아트 작품으로
- ‘전쟁과 그 이후 우리의 삶’ 다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인상 압박이 계속되면서 미군기지 한국인 근로자들의 무급휴직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50억 달러(약 6조 원)로 한국 측 분담금을 6배가량 늘릴 것을 요구해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군기지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은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의 평화를 지켜 준다던 미군기지가 한국인을 ‘볼모’로 잡은 셈이다.

부산 중구 오픈스페이스 배를 찾은 관람객들이 배성미 작가의 설치미술 ‘아름다운 초원’(왼쪽 사진)과 나미나 작가의 미디어아트 ‘썬크루즈’를 감상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때마침 미군기지를 소재로 ‘전쟁과 전쟁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전시가 열리고 있다. 부산 중구 대안공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전시 중인 나미나·배성미 작가의 2인전 ‘일어나지도 않은’이다.

1층 전시장은 녹색 종이를 잘게 자른 검정 모종으로 채워졌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초원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녹색 종이는 미국 화폐를 출력한 종이다. 배성미 작가의 설치미술 ‘아름다운 초원’은 부산시민공원을 표현했다. 오랜 기간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 자리였던 부산시민공원은 일제 강점기엔 경마장, 전쟁훈련소, 야적장 등으로 사용됐다.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의 무기보급, 전투지원의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부산시민공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가는 “이토록 오랫동안 남의 땅이자 우리에게는 금기의 땅으로 존재한 곳이 이제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초원으로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는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대한 의문을 품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4층 전시장에서는 나미나 작가의 미디어아트 ‘앙헬레스 시티’ ‘썬크루즈’가 전시됐다. 작가가 지난해 필리핀을 다녀온 후 남긴 작품으로 이소연 시인과 협업했다. 영상물 두 편이 좌우에서 동시에 폐허가 된 미군기지 현장과 관광지를 각각 보여주고, 남자와 여자는 시 ‘폐허라는 미래’ ‘문 없는 저녁’을 동시에 낭송하고 있어 소음처럼 들렸다.

‘썬크루즈’는 ‘앙헬레스 시티’와 달리 한 영상물에서 폐허인 미군기지 현장과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관광지 풍경을 함께 보여주고, 남성과 여성이 이소연 시인의 시 ‘후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낭독했다. 둘은 조화롭기보다는 불안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작가는 “필리핀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확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며 “무관심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찾아다니며 공감과 혼란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듯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추희정 수석큐레이터는 “미국은 평화수호, 전쟁방지라는 명목으로 영토를 넘어선 세계 곳곳에 기지를 세운다. 그러나 일어나지도 않은 잠재적 위협에 대한 방어체계는 현실의 폭력을 낳는다. 작가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미군기지로 인한 상흔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들춰낸 작업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배 작가는 수원대 미술대 조소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고 대구예술발전소와 서울 쿤스트독갤러리 등에서 4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나 작가는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8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와 2013년 문신미술관 영상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 가나아트센터 등에서 단체전을 해왔다. 전시는 다음 달 23일까지 열린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